[생활 속의 성경] 침실 (1) 이상훈 안토니오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네 번째로 살펴볼 집안의 장소는 침실이다. 지금 성인이 된 당신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자신만의 방을 갖게 된 그 순간부터 누군가와 함께 방을 쓰기 전까지 침실은, 현재의 자기 모습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바로 곁에서 지켜봤기에, 겪어온 즐거움과 고통, 노력과 생각 그리고 꿈을 함께 한 산 증인이 된다.
인간 존재의 가장 핵심적인 기초 공동체인 부부의 성립은 각기 다른 침실에서 다른 성장 과정을 거친 두 사람이 자유롭게 서로의 마음을 합하여 하나의 침실을 쓰면서부터 시작된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하나의 침실은, 자신을 드러내고 ‘나’와 ‘너’가 만나 이름을 주고받으며 친교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거룩하고 거짓 없는 ‘알몸의 행위’를 거쳐, 완벽하게 ‘타자’와 내가 일치를 이루는 전례의 장소가 된다. 두 사람이 일치를 이룬다는 침실의 의미는 신랑인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신부인 교회의 삶과 맞닿아 있다. 침실은 하루의 시작인 아침에 ‘희망’으로 가득 차 눈을 뜨고, 밤에는 온전한 ‘사랑’을 위해 침대에 이르며, 함께 한 이와 겹쳐진 팔 사이에 거리낌 없는 ‘믿음’만을 남겨두는 공간이다. 따라서 침실은 사랑하는 이와 사랑하는 이 사이에 주고 받는 삶의 충만함이 드러나는 곳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인간과 친교를 이루기 위해 직접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삶이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가정의 기초인 부부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 침실이라면 그 침실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구는 침대이다. 혼인을 맺은 부부의 침대는 생명의 모든 신비를 받아들이고 풀어내는 것을 본다. 다시 말해, 그곳은 함께 잠들고, 생명을 낳으며, 어린 자녀가 방을 가지기 전까지 성장시키게 되는 곳이다. 또 영적 유산을 전해주는 곳이자(창세 47-49 참조) 종종 죽음의 시간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하다.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바로 이 침실에서 시작한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에게 하신 것처럼(마태 8,14 참조), 혹은 죽음의 시달림에서 승리를 거둔 부활의 큰 선물처럼 표현된다. 엘리야는 과부의 아들을 그녀의 침실에서 다시 살게 했다(1열왕 17,17~22 참조). 그리고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가 했던 이 일을 수남 여인의 아들에게 똑같이 행했다(2열왕 4,8-37 참조).
이렇듯 침실은 성장한 두 사람이 서로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생명을 창조하고 또 보살피는 큰 상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와 보살핌은 서로 간의 충실한 신뢰가 전제되지 않았을 때는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인간적인 의미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 창조하신 세상을 ‘끊임없이’ 보살피신다는 하느님의 충실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종종 과거 어떤 선택을 내릴 때 그 선택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그 선택으로 인해 포기한 것을 지금 맛보려는 충실하지 못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그것은 선택한 것들의 가치가 익숙해져 아무런 감흥이 없는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호소는 끊임없이 수행해온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에 깨어 있으라는 초대이다. 충실함은 이렇게 자기 한계를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보완하는 성숙함을 기르고 자신이 과거에 내렸던 선택을 다시금 확신하는 능력으로 이끌어 인간에게 끊임없이 충실하신 하느님의 그 온전한 모습에 조금씩 접근하게 한다.
[2020년 2월 9일 연중 제5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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