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복음] 성 김대건 사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주예담’ 사람들 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0.09.20 발행 [1581호]
얼마 전에 재미있는 이름 하나를 알게 되었다. ‘주예담’이라는 어린아이의 이름이다. 흔하지 않은 고운 이름답게 아이의 모습도 예뻤지만, ‘주 예수님만 닮고 살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그 이름을 지어준 부모에게서 ‘주님 사랑’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담고 예수님을 닮아 살면 하느님께 은혜를 받아 오복(五福)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24절)라고 전한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험난하고 좁은 십자가의 길을 택해야 하며, 주님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처럼 예수님을 닮아 살기 위해서는 세상 중심의 인생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변해야 하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라는 말씀처럼 완전히 새로운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은 말 그대로 ‘주예담’의 삶이었다. 그들은 일생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임은 전 생애가 마냥 슬펐기에 임 쓰신 가시관을 나도 쓰고 살으리다. 이 뒷날 임이 보시고 날 닮았다 하소서. 이 뒷날 나를 보시고 임 닮았다 하소서. 이 세상 다 할 때까지 당신만 따르리라”(신상옥, 생활성가)고 다짐했기에 세상의 모든 형벌과 고통 그리고 죽음까지도 견딜 수 있었고, 오늘 2독서의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7) 라는 순교자들의 영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순교 성인들은 신앙의 눈으로 볼 때는 영광의 승리자이지만, 세상의 눈으로만 볼 때는 참으로 어리석은 실패의 삶을 산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잘 살고 싶고, 복을 누리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심이며 살아가는 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까지도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하여 이 모든 세상 것들을 포기한 이들이야말로 진정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지혜 3,9)이며 우리가 닮아 살아야 할 ‘또 하나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인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되면서 국민 모두가 자연스럽게 ‘무방우’(무엇보다 방역이 우선)의 세상이 되고, 안전을 담보로 신앙생활까지 포기해야 칭찬받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때때로 세상을 역행하여 스스로 수난과 고통, 그리고 죽음까지 수용하며 신앙을 사수하는 좁은 문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 순교자들이 세상과는 다른 길을 걸어간 것도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이며, 바오로 사도는 이 길에 참여하게 된 것을 영광이라 하였고, 그 길을 걸어감으로써 당해야 했던 모든 환난과 고통 또한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세상의 찬사에 흔들려 자기의 십자가를 내려놓고 세상 대열에 합류해 세속적으로만 살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해 있으나 세상과 구분되는 사람들로 우리는 이미 ‘주예담’이기 때문이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필리 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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