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8주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0.10.11 발행 [1583호]
오늘 복음인 ‘혼인 잔치의 비유’는 형태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루카복음 14장에도 나오는 내용으로, 어떤 사람이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루카 14,17) 하지만 초대받은 사람들은 모두 갖가지 핑계를 대며 오지 않는다. 어떤 이는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루카 14,18-20)는 내용이다.
이들은 궁색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핑계를 대며 모두 초대에 응하지 않고 일상에 갇혀서 새로운 삶의 기회를 스스로 박차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사람들의 모습이 왠지 익숙하다. 우리도 이들과 똑같은 모습의 삶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도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매번 당연하게 여겨지는 ‘방역 지침’ 핑계를 대면서 미사 전례 등 하느님의 초대에는 절대 응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세속적인 일에만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잘랄루딘 루미는 그의 시 ‘봄의 정원으로 오라’에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천상의 혼인잔치로 우리 모두 초대하셨음을 노래하고 있다.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필리 4,19)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하느님께서는 ‘봄의 정원’인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축복을 줄 것이니 모두 다 와야 한다는 하느님의 구원론적인 사랑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 잔치 이후에 곧 닥칠 종말론적 그날과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명도 잔치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하신다.
우리는 늘 현실적인 문제와 영적인 문제가 겹칠 때 더 중요한 것 하나를 먼저 선택해야 하는 ‘일의 우선순위’에 대한 갈등,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초대와 일상의 문제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선순위인가에 대한 단호한 결단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하느님 중심이 아니기에 하느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그저 세상일에 몰두하기를 원하는 세상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아인슈타인은 “삶을 사는 방식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모든 순간이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의 기회인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순간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불과한 것처럼 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느님의 초대는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마지막 기회이기에 절대로 어떠한 이유로도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도 살아계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잔칫집으로 초대하신다. 10월의 가장 멋진 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축복된 천상의 잔치를 마련하셨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또 어떤 경우이든지 절대로 하느님 앞에서 핑계를 대며 불참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핑계는 우리의 믿음을 파멸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으로 스스로 천국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통하여 은혜를 받으십시오. 삶은 아름다움입니다. 이 아름다움을 찬미하십시오.”(이해인 수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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