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1주일- 사순 시기의 ‘광야체험’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1.02.21 발행 [1601호]
어렸을 때 ‘부모의 죽음’이나 생사를 넘나드는 대형 ‘사고’ 혹은 ‘불치병’처럼 그 나이에 감당하기 버거운 큰 시련을 겪은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성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철없이 어리광부리던 ‘아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다움’을 일찍 잃어버린 모습은 안쓰럽지만, 어려운 여건에 처한 그 아이들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빨리 성장해 어른이 되는 것이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십니다.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척박하고 황량한 곳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부족하거나 결핍되어 있기에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한다면, 하느님을 만나 기도하는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그곳에서는 다른데 한눈팔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께만 매달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녀일수록 더 자주 광야로 내보내십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이 바라는 것을 해주고 싶어진다던데, 대체 왜 우리가 원치도 않는 쓰디쓴 광야 체험을 시키시는지 그 의도와 이유를 알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어렵고 힘든 숙제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광야로 보내신 ‘이유’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꺼이 광야에 머무르십니다. 그분께서 그곳에서 지내신 ‘40’이라는 날 수는 모세가 하느님께 받은 십계명을 돌판에 기록하기 전 시나이 산에서 단식하며 지낸 시간, 엘리야 예언자가 호렙산에서 하느님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기 전까지 밤낮없이 광야를 걸어야 했던 시간을 상기시킵니다. 예수님도 그들처럼 ‘40일’이라는 시간 동안 깊은 하느님 체험을 하셨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삶이 풍족할 때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는 별로 어렵지 않지만, 모든 것이 부족해 결핍을 느끼는 상황,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상황에는 그러기 어렵지요. 평범한 어려움에도 크게 동요하고,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악조건에도 40일 내내 계속되는 유혹을 이겨내심으로써, 삶에서 중요한 것은 빵이나 명예나 권력 같은 세속적인 것들이 아님을, 인간은 하느님의 도우심과 보호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으며 그분과 맺은 사랑의 계약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만 ‘하느님 나라’라는 약속의 땅에 이를 수 있음을 깨달으셨기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이 가르친 ‘회개’(悔改)는 자기의 과거를 낱낱이 파헤치고 단죄하는 자학(自虐)행위가 아닙니다.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사로잡혀 포기하듯 읊조리는 절망의 ‘내 탓이오’도 아닙니다. 회개는 치열한 세속의 삶을 멈추고 자기만의 ‘광야’를 찾아 스스로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할지 자기 삶의 경로를 수정하는 작업입니다. 잘 모르는 길에서 내비게이션을 신뢰하듯, 구원의 길을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나아가려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맺은 ‘사랑의 계약’을 언제나 변함없이 기억하신다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현세(現世)와 내세(來世)를 따로 구분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현세에도,내세에도 ‘같은 하느님’이십니다.그러니 내세에서 그분의 사랑과 은총을 누리는 자녀로 살고 싶다면, 현세에서부터 그분의 자녀답게 살기 위한 노력, 그분과 더 깊이 일치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순 시기는 각자의 ‘광야체험’ 안에서 그런 노력을 경주하는 시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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