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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4주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이뤄지는 삶

by 파스칼바이런 2021. 3. 15.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4주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이뤄지는 삶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1.03.14 발행 [1604호]

 

 

 

 

이란 서남부의 데자그 마을에 사는 ‘하지’씨는 ‘청결이 병을 불러온다’는 생각에 60년 넘게 씻지 않고 더럽게 살아왔습니다.신선한 채소와 깨끗한 물에 대한 혐오감도 큽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신선한 음식과 물을 가져다주면, 그런 것을 어떻게 먹느냐며 역정을 내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칠 정도입니다. 대신 그는 썩은 고슴도치 고기를 즐겨 먹고, 녹슨 기름통으로 더러운 물을 떠 마시며,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지어준 집을 마다하고 자신이 직접 판 구덩이에서 살아갑니다. 깨끗한 물과 신선한 음식, 아늑한 집을 거부하는 것은 오랜 시간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져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주변에서 좋은 것들을 추천해도, 스스로가 불편하고 싫은 선택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기가 불편하고 싫다는 이유로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과 구원의 선물들을 마다하는 우리의 어리석은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인데도, 이미 하느님의 뜻으로부터 멀어져 죄악의 ‘어둠’ 속에 사는 데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가 그 ‘좋은 길’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어둠 속에서 불행하게 사는 쪽을 선택한다는 것이지요. ‘심판’과 ‘지옥’을 두려워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지 못해 스스로 그 상태에 머무르려고 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예로 드신 것이 민수기(21,4-9)에 나오는 ‘구리뱀 이야기’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를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뜻을 믿지 못하고 그분께 불평불만을 늘어놓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불뱀’을 보내셨고 그 뱀에 물린 많은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그러자 모세가 주님의 뜻에 따라 구리로 뱀을 만들어 높은 장대 위에 매달았고, 믿음으로 그 뱀을 쳐다본 사람들은 모두 치유됩니다. ‘불신’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함으로써 생명과 구원을 누리도록 섭리하신 하느님의 큰 뜻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즉,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조건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복된 소식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관계의 기본이자 핵심입니다. 부부는 사랑 없이 살 수 있지만 믿음이 깨지면 살 수 없습니다.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부부는 그저 껍데기만 함께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가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은 우리가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순간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어야 성경 말씀 안에서 드러나는 주님의 뜻이 나와 상관있는 이야기가 되고, 그래야 비로소 하느님과 ‘기도’를 통해 대화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내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하느님께서 비춰주시는 진리의 빛을 외면하고, 악한 일을 저지르며, 어둠 속에 숨느라 멸망을 자초(自招)할 뿐입니다. 인간은 어둠 속에 있으면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에 매몰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하느님의 진리를 발견하며 실천하는 사람은 구원의 빛에 인도되어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갑니다. 구원은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이 아닙니다. 무조건 참고 믿어서 얻어내는 보상(報償)도 아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데 대한 포상(褒賞)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빛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더 넓게, 더 밝게, 더 제대로 보고, 그 안에서 더 큰 기쁨과 자유를 누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삶 자체가 바로 구원입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나의 삶 속에서, 나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