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복음] 부활 제3주일 - 마음을 열어야 보이는 부활의 신비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1.04.18 발행 [1609호]
제 강론에 대해 항상 좋은 피드백을 해주는 본당 청년들이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나아갈 길을 알려주어서 감사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멋모르던 새신부 때였다면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져 제가 잘난 줄 알았겠지만, 다행히 지금은 그러지 않습니다. 제 능력으로 감동과 깨달음을 준 게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기에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복음적 삶의 방향을 충실히 따랐기에 그 삶이 결실을 본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지만,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그분이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기들 눈앞에 떡하니 서 있으니 ‘유령’으로 생각되어 무서울 법도 합니다. 더구나 그 대상에게 잘못한 바가 있어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상황이라면, 자기들에게 ‘복수’라도 하려고 오셨나 보다 생각되어 그 두려움은 더 커지겠지요.
제자들이 그런 오해에 빠진 것은 마음이 굳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어떤 대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굳어져 있으면 그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법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음을, 무덤에 묻혀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상식’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과 ‘상식’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마음은 열지 못한 채 머리로만 예수님을 바라보니 아는 게 병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제자들이 어떻게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순서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 몸에 난 상처들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는 행동이나, 제자들 앞에서 음식을 드시는 행동으로 인해 제자들이 오해를 바로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표징들은 예수님께서 유령이 아니며, 온전한 육체를 지닌 상태로 부활하셨음을 머리로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마음을 연 것은 내적인 요인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은 죽는 게 두려워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제 안위를 챙기고자 고통과 모욕을 겪으시는 그분을 외면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단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평화를 빌어주셨습니다. 그런 그분의 따뜻하고 자상한 마음이 제자들의 마음을 연 것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어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부활의 신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연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명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눈이 틔어서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게 됩니다.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희망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 말씀 안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볼 영적 시야를 일깨우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조건없는 사랑과 한없는 자비로 우리 마음을 여시어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해 주셨으니, 힘들고 괴로운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기쁘게 살 수 있는 법을 알려주셨으니, 우리는 즉시 죄를 뉘우치고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되돌려야 합니다. 또한 모든 민족들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사랑과 자비의 실천으로 그들을 하느님께 이끌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증거자’로서의 소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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