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별을 따라간 동방 박사들 김명숙 소피아 박사
베들레헴에는 ‘예수 탄생 성당’이 있습니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가 짓고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재건한 곳입니다. 전쟁 많은 이스라엘에서 이 성당이 보존될 수 있었던 건 ‘동방 박사와 아기 예수’ 성화 덕분입니다. 7세기 페르시아가 침공했을 때 성화 속 동방 박사들이 페르시아 복장을 한 걸 보고, 자기들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무너뜨리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지가 의외의 이유로 보존된 게 한편의 드라마 같지요. 어찌 보면 멀리서 메시아를 알아본 동방 박사들이 죽어서도 탄생지를 보호해준 셈입니다.
성경에서 “동방”은 이스라엘 기준으로 동쪽, 곧 메소포타미아를 가리킵니다. 동방 박사는 페르시아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사제 계층으로 추정되는데요, 조언자로서 임금을 섬겼다고 합니다. 조로아스터는 니체의 책으로도 유명한 ‘짜라투스투라’이지요. 동방 박사를 뜻하는 페르시아어 ‘마구쉬’는 그리스어 ‘마고스’와 라틴어 ‘마구스’를 거쳐 ‘매직’이라는 영단어로 발전합니다. 동방 박사는 별의 움직임으로 시대의 흐름을 읽던 점성술사였습니다. 그들은 주변의 정치, 다시 말해 주변국 임금의 즉위와 몰락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대부분 점성술사가 긍정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방의 임금도 도구로 쓰시고(예레 25,9) 때로는 이방의 점술로 사실을 말하게 하십니다(에제 21,26-28).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왔다가(마태 2,1) 헤로데의 왕실에서 조언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갑니다(6절). 헤로데는 다시 돌아와 달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지요(12절).
우리는 동방 박사를 세 명으로 보지만, 사실 마태오 복음에는 몇 명인지 안 나옵니다. 세 명으로 본 까닭은 그들이 바친 선물이 셋이라는 데 있습니다. 교부들은 세 선물 가운데 ‘몰약’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제사에 쓰이는 ‘유향’에서는 예수님의 신성을, ‘금’에서는 왕권을 떠올렸습니다.
별을 따라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 박사들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바 여왕(1열왕 10장)도 떠올리게 합니다. 그도 향료와 금과 보석을 선물로 가져왔지요. 마태오 복음은 다윗의 후손 예수님과 다윗의 아들 솔로몬 사이의 공통점을 부각하려 한 것 같습니다. 또한 솔로몬(히브리어로 ‘쉴로모’)과 평화를 뜻하는 ‘샬롬’은 어근이 같은데, 아기 예수님은 “평화의 군왕”(이사 9,5)으로서 솔로몬을 능가하여 평화를 확립할 메시아시라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통상 임금에게는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하듯이(1사무 24,9; 1열왕 1,16) 동방 박사들도 아기 예수님께 그렇게 하는데요, 바로 예수 탄생 성당의 제대가 그 자리였습니다. (사진 참조)
임금을 섬기던 그들이 초라한 아기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의미입니다. 세속적인 처세술에 따르면 헤로데에게 돌아가 예를 표하는 게 더 이익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 탐구를 중시한 동방 박사들이었기에 세상의 기준을 따르지 않았고, 이런 그들이었기 때문인지 결국 이스라엘 백성보다도 먼저 메시아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구세주를 알아보고 찾아온 동방 박사들은 이후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이방인들의 예표가 되어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1월 2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의정부주보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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