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9) 율법과 약속(3,15-29)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학다리 본당)
두 번째 논증(3,1-4,7)의 세 번째 단락(3,15-29)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단락에서 바오로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사실(2,16)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관례인 ‘유언’을 예로 듭니다. 한 사람의 유언이 합법적으로 비준된 것이라면, 그 후 어떠한 경우도 그 유언을 무효화할 수 없습니다(3,15).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사백삼십 년” 뒤에 생겨난 율법에 의해 무효로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그를 의롭다 여기시고, 그와 그 후손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3,6-14). 이러한 하느님의 약속은 뒤이어 생긴 율법에 의해 폐기되거나 첨가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믿음에 근거하여 사람을 의롭게 하신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왜 율법을 주셨을까요? 그리고 예수님 시대 이후 율법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바오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 율법은 “감시자” 노릇을 했습니다(3,24). ‘감시자’로 번역된 그리스어 παιδαγωγς는 본디 그리스 로마 시대 아이를 등하교 시키던 노예를 가리키던 표현으로, 아이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이끌어주던 역할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어진 하나의 도구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바오로가 율법을 마치 인간처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갈라티아인들의 생각을 교정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들은 율법이 하느님게서 주신 만고불변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에 바오로는 율법이 여느 인간처럼 시간과 공간 안에 속해 있는 것, 곧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시로 주어진 것임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둘째, 율법의 감시자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로 끝났습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율법의 감시를 받아왔습니다”(3,23);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3,25). 바오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예언된 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이 지녔던 믿음은 하느님을 대상으로 하면서 동시에 앞으로 신앙인들이 갖게 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예언하고 있습니다(3,6-8). 바오로는 구약에 예언된 믿음, 곧 의로움으로 이끌 믿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2022년 2월 20일 연중 제7주일 광주주보 빛고을 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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