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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미카엘의 순례일기] (56) 타인을 위해 기도하기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2.

[미카엘의 순례일기] (56) 타인을 위해 기도하기

세 명이 한마음으로 기도하니 기적같은 일이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가톨릭평화신문 2022.02.27 발행 [1651호]

 

 

 

▲ 많은 이들은 기적이 성경 속에나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하느님을 향한 그리스도인 삶의 여정 자체가 은총이며 기적이 아닐까. 한 순례자가 아시리아 제국의 대도시였으며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 7개 교회 중 하나인 라오디케이아 유적터를 걷고 있다.

 

 

어느 본당의 순례 때 일입니다. 신부님의 전임지 본당에서 오신 세 분의 젊은 자매님께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순례단 모두의 양해를 얻어 함께 떠나게 됐습니다. 다른 본당의 신자들이 함께 오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만, 순례단은 내내 한 식구처럼 지내며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순례의 마지막 날 아침이었습니다. 모두가 공항으로 갈 짐을 정리하고 아침을 먹으러 가는데, 갑자기 총구역장님의 남편분께서 방문을 박차고 나와 크게 외치셨습니다.

 

“기적이다, 기적이 일어났어요!”

 

신자들이 깜짝 놀라 모여들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총구역장님께서는 침대에 앉아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제가 머리를 흔들지 않고도 말을 할 수 있어요.”

 

모두 손뼉을 치며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사실 총구역장님에게는 틱 증상이 있었습니다. 말을 할 때마다 조금씩 고개를 흔들었지요. 처음 뵈었을 때, “제가 어릴 때부터 이랬어요. 좀 이상하더라도 이해해주세요”라며 웃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함께해온 그 틱 증상이 하룻밤 새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순례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순례자들은 바깥 풍경 대신 총구역장님의 얼굴을 쳐다보느라 온종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순례를 모두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 총구역장님께서 마이크를 잡고는 함박웃음을 지으셨습니다.

 

“다들 한 가족처럼 잘 지내주셔서 감사드려요. 특히 우리 자매님들께서는 어쩜 그리 싹싹하신지, 우리 본당 식구인 줄로만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는 특별한 하느님의 선물을 받았어요. 또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버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들지만, 남편이 ‘내일 다시 그 병이 도진다 해도 괜찮아. 단 하루라도 이런 당신을 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라고 말해주었죠. 이런 저와 결혼해준 남편에게 항상 미안했는데 남편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제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지요. 신부님을 비롯해 모든 순례자, 그리고 특히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모두 힘껏 손뼉을 쳤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자매님들께 소감을 청하셨습니다. 한 분이 앞으로 나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허물없이 동생처럼 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고개 숙여 인사 하셨습니다. 다시 큰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자매님께서는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잠시 쭈뼛대시더니 다시 마이크를 잡으셨습니다.

 

“이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 고민했어요. 괜한 자랑이나 교만으로 생각될까 봐요. 하지만 하느님을 믿고 말씀드릴게요. 신부님께서는 처음에 저희의 부탁을 거절하셨지만,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궂은일을 다 할 테니 신자들께 허락을 받아달라’고 매달렸고, 여러분들께서 받아주셨지요. 저희는 정말로 모든 일을 다 맡아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총구역장님께서 순례에만 집중하라며 당신께서 발 벗고 나서신 덕에, 첫날부터 할 일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첫날 저녁에 셋이 모여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꼭 찾아보자고 의논을 했어요. 그러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마태 6.3)는 구절이 떠올라, 누구도 모르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순례단을 위한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싶었지만, 모두 처음 뵙는 분이라 그건 불가능했지요. 그래서 총구역장님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자매님께서 머리를 흔들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성당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그렸지요. 12일 동안 하루 두 번 묵주기도를 한 것뿐이었지만, 세 명 모두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어요.

 

아침에 총구역장님을 뵙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방에서 서로 손을 잡고 난리가 났었답니다. 물론 저희의 기도가 그 기적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자매님께 기적을 주려고 계획하셨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타인을 위한 진심 어린 기도는 하느님께서 꼭 들어주신다는 것을, 이제는 정말 알겠습니다. 하느님, 신부님, 총구역장님! 그리고 여러분! 저희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우렁찬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교회 역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기적과 은총이 있지만, 사실 그것이 우리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이 기적은 성경 속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여기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 하느님을 알아가는 것,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기적이 아닐까요? 그런 기적들이 모이다 보면 어느 날 그 순례단에 일어났던 것과 같은 커다란 선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