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의 순례일기] (58) 성 요셉 성당(성가정 성당) 성가정을 이루는 길은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가톨릭평화신문 2022.03.13 발행 [1653호]
▲ 3월은 성 요셉의 성덕을 칭송하고 그분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길 기도하는 성 요셉 성월이다. 사진은 성 요셉 성당에 있는 성가정상.
3월은 성 요셉 성월입니다. 이달에는 미사 봉헌 후 ‘성 요셉 성월 기도’를 합송하며 성인의 성덕을 칭송하고 그분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기를 결심합니다. 3월 19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이지요.
이스라엘 순례를 함께했던 순례단 중에 전체 순례자 중 절반 정도가 ME(매리지 엔카운터) 부부였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처음 그분들을 만났을 때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순례하는 동안 ‘나의 빛나는 사랑인 가브리엘씨!’, ‘어여쁜 천사 데레사씨!’ 하고 세례명 앞에 특별한 수식어를 붙이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스무 명에 이르는 부부들이 서로를 그렇게 부르는 모습이 낯설기 그지없었더랬지요. 그랬던 만큼, 그때의 순례 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다름 아닌 나자렛의 성가정 성당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나자렛은 본래 작은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나라에서 손꼽는 도시로 발전했으며 특히 가톨릭 신앙을 가진 팔레스타인 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입니다. 유다교 전통에 따라 안식일(토요일)을 공휴일로 지내는 이스라엘에서도 유일하게 주일을 휴일로 지정했을 정도니까요. 나자렛의 중앙에는 거대한 성당이 자리 잡고 있는데, 바로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입니다. 마리아의 실제 집터 위에 건축된 이 성당의 안팎에는 세계 각지의 교회에서 보내온 모자이크 작품이 걸려있고, 성당 중앙의 집터 앞에는 무릎을 꿇고 묵상하는 순례자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중요한 성당이 있습니다. 바로 성 요셉 성당입니다.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께서 거룩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셨던 장소이기에 ‘성가정 성당’이라고도 부르지요.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의 거대한 규모에 경탄하던 순례자의 눈에는 맥이 빠질 정도로 작고 소박한 건물입니다. 성가정 성당이라고 하면 대부분 그 유명한 바르셀로나의 성가정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스페인어: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를 떠올리지만, 사실 성가정 성당의 원조는 바로 이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성 요셉 그리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사셨던 바로 그곳이니까요.
저희 순례단이 성가정 성당에 도착하던 날, 인파가 가득했던 주님 탄생 예고 성당과 달리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가정 성당의 중요성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요셉 호칭기도를 함께 바친 후, 저는 순례단에게 고개를 들어 성당의 좌우 벽면을 보아달라고 했습니다. 성당의 천장과 맞닿는 벽에는 각기 다른 그림과 라틴어가 새겨진 24개의 작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성 요셉 호칭 기도문에 언급된 24가지 호칭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어떤 형제님 한 분과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형제님은 성가정 성당이 생각보다 작고 초라해서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는 바가 많아졌다고 털어놓으셨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경험 때문에 상처가 많았어. 그래서 결혼하고 나서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려고 많이 노력했고, 또 신자로서 성가정을 본받아 거룩한 가정이 되기를 바랐어. 그런데 성가정 성당에서 바쳤던 성 요셉 성월 기도를 묵상하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작 가정의 주도권을 하느님이 아닌 내가 가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서 한없이 부끄러워져. ‘하느님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는 요한 세례자의 말씀이 머릿속에서 계속 들리는 것도 같고. 순례 후에 좀 더 좋은 가장이 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네.”
그때 멀리서 자매님께서 형제님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의 빛나는 사랑 가브리엘씨! 거기 계세요?”
형제님과 저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걸어가면서 저는 ‘하느님께서는 형제님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려 이번 순례에 오도록 하셨고, 형제님께서는 그 말씀을 이미 들으신 게 아닐까,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게다가, ‘어여쁜 천사 데레사’ 자매님께서 형제님을 부르고 계시잖아요. 하느님을 믿고 천사의 목소리를 따라 살아가면 결코 잘못될 일은 없겠지요. 그나저나 저 호칭은 아무래도 순례가 끝날 때까지 익숙해지진 못할 것 같네요.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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