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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미카엘의 순례일기] (62) 성체를 모시는 일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12.

[미카엘의 순례일기] (62) 성체를 모시는 일

‘큰 예수님’으로 주세요!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가톨릭평화신문 2022.04.10 발행 [1657호]

 

 

 

▲ 이탈리아 로레토 대성당 성체조배실에 보존된 루이 9세의 영성체 장면을 묘사한 벽화. 당시에는 그 어떤 죄도 없이 완전히 깨끗한 상태에서 성체를 영해야 한다는 생각에 성체 모시는 일 자체가 매우 특별한 예식이었다.

 

 

이탈리아 순례를 떠난 길이었습니다. 일정에 여유가 있었던 어느 날, 휴식 시간에 순례단이 모두 풀밭에 모여 앉았습니다. 즐거운 담소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신부님께서 무엇이든 답해주시겠다고 장담하며 질문을 받기 시작하셨습니다. 누군가 짓궂은 어조로 신부님의 첫사랑이 궁금하다고 외치자 와르르 웃음이 터졌고, 또 동생이 신천지에 발을 들여놓아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심각한 고민도 나왔습니다. 그렇게 한참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어떤 자매님께서 조심스럽게 신부님께 물어보셨습니다.

 

“왜 신부님은 큰 예수님을 먹고 신자들은 작은 예수님을 먹나요? 우리도 좀 커다란 성체를 영하면 안 되는 건가요? 항상 궁금했는데, 누구한테도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다들 말문이 막힌 채 서로를 돌아보았습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자매님의 얼굴은 진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분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자녀들을 홀로 키우며 어렵게 살다가 일흔이 되어서야 겨우 일손을 놓으셨고,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은 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셨습니다. 워낙 조용한 성품이셨던 터라 가끔 잘 모르는 교회 전례나 이해하지 못하는 교리가 있어도 그저 그러려니 하며 본당 활동에 전념하셨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곤란한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셨습니다.

 

“음, 크고 작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미사에 참여한 모든 분께 잘 보여야 하니까 큰 제병을 쓰는 거지요. 조그만 제병을 들어서 거양성체를 하면 잘 안 보이거든요. 어쩌면 신부들이 욕심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지요. 우린 혼자서 살아야 하잖아요? 이해해 주세요.”

 

그러자 자매님께서는 조그만 목소리로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저도 혼자 사는데….”

 

결국, 신부님은 다음 날부터 순례가 끝날 때까지 미사를 드리기 전 제의방 담당자에게 큰 제병을 25개씩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셔야만 했지요.

 

며칠 뒤 순례단은 성모님께서 살던 나자렛의 집(SANTA CASA : 거룩한 집)을 옮겨와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로레토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일전에 한 번 소개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의 대성당에는 루이 9세의 영성체 장면을 묘사한 벽화가 있습니다. 현대의 신자들은 간과하기 쉽지만, 이렇게 성체를 영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은 단순히 영성체의 중요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루이 9세는 성 루이(Saint Louis)로 더 잘 알려진 13세기의 성인입니다. 프랑스의 역대 국왕 중 유일하게 성인 품에 오른 루이 9세는 나라의 번영과 발전을 이뤄낸 동시에 깊은 신심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제3회원으로 활동하며 금욕과 청빈, 자선을 실천했던 그는 자신이 만든 구호소에서 빈민들의 발을 직접 씻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0년이 넘도록 프랑스를 통치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려 노력했던 루이 9세조차 평생 단 6번밖에 성체를 영하지 못하였지요.

 

초기 교회에서는 매 주일 영성체를 했습니다. 그러나 성체와 관련된 이단이 늘어나면서 그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 어떤 조그마한 죄도 없이 완전히 깨끗한 상태에서만 성체를 영해야 한다’는 생각은 덩달아 커져갔습니다. 마음속에 죄를 두고서는 성체를 영할 수 없다는 이러한 관념은 일반 신자들에게 커다란 벽이었습니다. 한때 고해성사는 일생에 단 한 번만 허락되는 엄중한 의식이었으며 그 이후에 짓는 죄는 두 번 다시 참회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후 반복적인 고해성사가 등장하여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리 잡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만큼 영성체는 드물고 특별한 예식이었던 것입니다.

 

거룩한 집을 순례한 후, 신부님께서는 루이 9세의 벽화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인품에 오르실 만큼 훌륭한 신앙인이었던 루이 9세조차 영성체를 고작 여섯 번 모실 수 있었다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네요. 벽화로 그려서 남겨야 했을 만큼 특별했던 일을 우리는 매일 일상처럼 할 수 있으니 말이지요. 예수님의 몸을 더 많이, 더 자주 내 안에 모시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 말이죠. 오늘 하루, ’영성체는 천국으로 가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라는 성 비오 10세 교황님의 말씀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큰 제병으로 영성체를 하고 싶다면 언제든 우리 수도원으로 찾아오세요. 잔뜩 준비해 놓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