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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미카엘의 순례일기] (65) 화려한 시에나, 황무지 아꼬나(하)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3.

[미카엘의 순례일기] (65) 화려한 시에나, 황무지 아꼬나(하)

위대한 관상가 성인이 동굴에서 나온 이유는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가톨릭평화신문 2022.05.01 발행 [1660호]

 

 

 

 

시에나에서 아꼬나로 가는 길은 토스카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그 아래 쉼 없이 이어지는 나지막한 언덕마다 푸르름이 가득하고, 대자연 속에 녹아든 고즈넉한 주택들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도로 위에서 목자와 함께 풀밭으로 향하는 양 떼를 만나도 절대 경적을 울려서는 안 됩니다. 양 떼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면서 스스로 길을 터주길 기다릴 뿐이지요. 하늘과 밀밭, 양 떼와 올리브 나무가 어우러진 그 길을 가다 보면 화려한 시에나를 아쉬워하던 순례자의 마음도 금세 평화로 가득 차게 됩니다. 물론 베르나르도 가문이 소유하던 시절 700년 전의 아꼬나는 높은 절벽에 둘러싸여 개간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어 지금과 사뭇 다른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 안으로 들어가려면 버스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오래전 이 길을 따라 수도원을 향했던 이들은, 살아생전 이 길을 다시 내려오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었을 테지요. 그렇게 도착한 수도원의 입구에는 세상과 수도원의 경계를 이루는 작은 해자가 있습니다. 이 해자를 건너면 앞뒤로 성모자상과 베네딕토 성인상이 세워진 아치형 성문을 지나게 됩니다. 문 옆 수도원 입구의 건물에는 작은 레스토랑 겸 카페가 마련되어 있는데, 과거처럼 수백 명의 수도자가 살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성인의 뒤를 잇는 30여 명의 수도자가 수덕생활을 하고 계시기에 순례자는 이곳에서 따로 식사합니다. 우리나라 사찰의 절밥이 유명한 것처럼 올리베토 수도원의 파스타는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히는 맛을 자랑합니다.

 

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의 규모는 상당합니다. 거대한 저수조만 봐도 한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여 살았었는지 느낄 수 있지요. 저수조를 지나면 톨로메이 성인의 성상과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거대한 성당, 수도원 그리고 순례자 숙소가 있습니다. 13세기에 150년에 걸쳐 수도자들이 직접 벽돌을 구워 봉헌한 성당과 수도원 내부의 주 회랑(Primo chiostro)의 벽화는 수도원의 자랑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의 일생을 그린 이 벽화는 36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 한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소도마(Il sodoma)와 루카 시뇨렐리(Luca Signorelli)의 것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지요. 물론 이 수도원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성당 앞, 정원 끝에 위치한 톨로메이 성인의 동굴입니다. 복자 암브로시오 피콜로미니, 복자 파트리치오 파트리치와 함께 41세 때에 은수 생활을 시작한 장소인 이곳은 700여 년 전의 모습 그대로 여전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거친 땅을 파서 만든 동굴 안에서 지푸라기를 덮고 나무 베개를 베고 살았던 성인의 삶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톨로메이 성인의 최후는 이렇듯 세상과 동떨어진 수도원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여느 수도자의 조용하고 단출한 죽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성인께서 75세가 되시던 해, 이탈리아 전역에 페스트가 창궐합니다. 시에나는 시민의 절반 이상이 사망하여 길바닥에 시체가 가득할 정도로 황폐해졌지요. 그때 톨로메이 성인께서는 80명의 수도자를 이끌고 아꼬나를 떠나 시에나로 오셨습니다. 시에나에서 활동하던 형제 수사들과 다른 시민들을 돌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사람들이 죽어 나갔지만 장례 미사를 주례해야 할 사제들마저 도망친 버려진 도시에서, 성인과 80명의 형제는 끝까지 남아 병자들을 돌보다가 결국 모두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베네딕토 성인께서는 ‘수도자는 사랑을 성장시켜야 하는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침묵과 절제된 삶을 통해 수도자가 찾는 것은 하느님을 닮은 사랑입니다. 그러니 기도에 전념할수록 하느님의 마음처럼 세상의 어려움에 더 아파하게 될 것이고, 그 아픔을 어루만져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초세기 수도자가 남긴 기록처럼, “관상가는, 필요할 때, 적극적인 사랑에 침묵을 양보”해야 합니다. 이 모든 원칙과 질서를 보여주신 분이 바로 똘로메이 성인이십니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셨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또 다른 모습이 기도하는 수도자였다면, 침묵하는 관상가로 살았던 베르나르도 톨로메이 성인은 사랑을 실천하는 활동가로 그 생애를 마치셨습니다. 몬테 올리베토 대 수도원의 그 ‘작은 동굴’, 그리고 톨로메이 성인의 삶과 죽음은 21세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