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노 시인 / 찻집, 프리다 칼로에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가난한 꿈이 떠나갔다면 물총새 우는 그 강가 프리다 칼로로 가자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보다 잃어버린 것을 향해 끝없이 텔레파시를 보내 무사를 기원하는 파닥이는 미루나무 이파리 푸른 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안심할 테니 상실감 때문에 울었던 날은 떠나간 것에 보내는 깊은 애정임을
가버린 것이 있다면 떠나간 꿈 때문에 아픔이 있다면 그 강가 프리다 칼로 라는 찻집에 가자 강가에서 짝 잃고 저물도록 울고 있는 작은 물새보다, 프리다 칼로의 고통 보다 버려진 아픔은, 아픔이 아니라는 것을 한 잔 커피로 마셔버릴 고통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별빛 쌓여가는 강물을 보며 떠나왔던 곳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 터이니
오늘 나는 흔들리며 강물에 어리는 찻집 물비늘 사이로 흔들리는 프리다 칼로를 바라보며 머리 벅벅 긁으며 늦은 후회처럼 섰다.
김왕노 시인 / 정부미자루
어머니 쌀 한 톨도 못 지니고 분 냄새 고운 청춘도 자식에게 다 쏟아 부으셨다. 자식에게 평생 밥 차려주시며 당신은 우물물로 배를 채우고 나는 먼저 많이 먹었다며 어서 먹고 무럭무럭 자라라며 대견스러운 듯 우리를 바라보셨다. 모처럼 고향집에 가니 모든 것을 다 쏟아 붓고 난 쪼글쪼글해진 정부미 자루 하나 잘 왔다며 쪼르르 부엌으로 잰걸음으로 가시는 게 보였다.
김왕노 시인 / 동물성 가족
형은 책벌레로 살았고 나는 개로 살았다.
형은 밤 깊어도 어느 책 속의 외로운 책벌레로 문장을 사각사각 파먹었다.
나 는 본능이 살아난 개로 고개 넘어 순이가 생각나 밤을 물어뜯으며 울부짖었다.
아직 나는 늙은 개로 살고 형은 어느 고전 속에서 여전히 책벌레로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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