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우 시인 / 오늘, 쉰이 되었다
서른 전, 꼭 되짚어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핥고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로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그릇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창비, 2001년
이면우 시인 / 고비 사막을 건너는 힘
낙타도 없이 이 세상 끝에 무엇하러 왔느냐고 물어주길 바라며 찬바람 쨍쨍 흙먼지 풀풀대는 사막을 걸어갔다
이렇게 대답해줄 참이었다 흰구름 양 떼 따라 바로 당신을 만나러 왔노라고, 흙모래 속 듬성듬성 바다자갈 낯선 이 사막을 다 건너 처음 만나게 될 나무 같은 다음 생을 만나러 왔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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