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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면우 시인 / 오늘, 쉰이 되었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17.

이면우 시인 / 오늘, 쉰이 되었다

 

 

서른 전, 꼭 되짚어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핥고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로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그릇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창비, 2001년

 

 


 

 

이면우 시인 / 고비 사막을 건너는 힘

 

 

낙타도 없이

이 세상 끝에 무엇하러 왔느냐고

물어주길 바라며

찬바람 쨍쨍 흙먼지 풀풀대는

사막을 걸어갔다

 

이렇게 대답해줄 참이었다

흰구름 양 떼 따라 바로

당신을 만나러 왔노라고,

흙모래 속 듬성듬성 바다자갈 낯선

이 사막을 다 건너

처음 만나게 될

나무 같은

다음 생을 만나러 왔노라고

 

 


 

이면우 시인

1951년 대전에서 출생. 보일러공으로 생업.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한남대 문창과 대학원 졸업. 1991년 첫 시집 《저 석양》을 펴내면서 등단.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2002년 시 〈거미〉로 제2회 노작문학상 수상. 호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