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주 시인 / 배 나온 남자
특별하게 잘 먹는 것도 아니고 운동부족도 아니다 오히려 많은 날들을 배고픔에 시달렸고 어린 나이에 각종 일로 온몸 성한 곳이 없는데 이상하다 물만 먹어도 살이 오른다
밥 앞에 고개 숙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비굴하게 밥을 번 적은 없다 북한 어린이 돕기 성금보다 술값을 더 지출한 게 사실이지만 큰맘 먹고 하는 외식도 고작해야 자장면이고 특별히 탕수육을 곁들인 날은 밤새 설사로 고생했다
굶은 기억이 살찌게 하나 슬픔이 배부르게 하나 그 기억을 잊기 위해 얼마나 허겁지겁 살아냈는지 잊는다는 것이 병을 주었나
참는 것이 밥이었고 견디는 일이 국이었고 울며 걷던 길은 반찬으로 보였는데
배 나온 사람들을 보면 부황과 간경화로 먼저 간 식구들이 떠오른다
저, 좁은 땅 다 파먹고 말없이 누워있는 슬픈 무덤 덩어리들
유용주 시인 / 형제간
겨울 신무산에서 고라니똥을 만났다
쥐눈이콩처럼 반짝이는 무구한 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완벽한 채식만이 저 눈빛을 만들 수 있으리라
쌓인 눈 위에 찍힌 황망한 발자국들...... 똥 누는 시간마저 불안했구나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다 나도 그저 한 마리 채식동물에 불과한데
미안하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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