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임서령 시인 / 저승꽃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1.

임서령 시인 / 저승꽃

 

 

병상에 누운 아버지 체중이 줄 듯

닭들도 하루하루 살이 내렸다

더는 먹일 게 없어 이백 마리 달구새끼 잡던 날

장작불은 커다란 가마솥을 머리에 이고 이글거렸다

 

푸드덕 홰를 치며 도망가는 닭을

두 마리씩 묶어 낟가리처럼 쌓아 놓고

스무 살 오라비는 서툰 손놀림으로 멱을 찔렀다

발발 떨던 놈들이 축 늘어질 때면

세살 아래 누이는 코 끝에 엉겨 붙는 노린내를

우두둑 우두둑 잡아챘다

아버지 머릿속 암 덩어리 뜯어내듯, 오라비는

닭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끄집어냈다

암탉의 뱃속에는 아버지의 산란되지 못한 꿈들이

설익은 포도송이처럼 노랗게 맺혀 있었다

 

오라비 칼질은 더욱 빨라지고,

마침내 아홉 개의 토막으로

살아 퍼덕거리던 닭들의 생이 낱낱이 해체됐다

닭털과 창자들을 보리밭 귀퉁이

깊이 판 구덩이에 쓸어 묻을 때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에 깜짝, 청보리가 익어갔다

 

병색이 짙어가는 아버지 얼굴에

이백 마리의 닭들의 울음이

보리 깜부기처럼 내려앉았다

 

 


 

 

임서령 시인 / 소리와 싸우다

 

  

고래고래 악을 쓰는 노랫소리 귀를 찢고

싸이키 조명이 어둠을 휘젓는 노래방,

카운터에 앉아 나는 시를 쓴다

저 불안한 음정처럼

삶을 지고 절뚝거리는 발자국이

원고지에 찍힌다

 

무거운 잠을 털어내며

새벽이 오는 소리를 그리고 싶었다

떡잎이 흙을 밀어 올리는,

어둠을 떠받치던 가로등의 어깨가 접히는,

젖은 안개를 당기며 자박자박 걸어오는,

말라가는 감성의 줄기들을 살려내려 애쓰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생각의 헛된 몸짓

내 귀는 소음에 길들여져 있다

 

노랫소리와 운율이 끊임없이 대립을 하고

궤도를 이탈한 소리가 행간으로 뛰어든다

내가 그리려는 소리는 그때마다 툭툭 끊어진 채

한 문장도 이루지 못하고 새벽 목전까지 흘러왔다

차라리 이 풍경들을 쓸어 모아 한 연으로 묶기로 한다

 

한 번도 방음벽을 쳐 보지 못한 내 삶으로

또 다른 소음 하나 뛰어든다

 

 


 

임서령 시인

1961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 2010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산맥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