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현장에서] 가족의 의미 김문희 신부(서울대교구 병원사목위원회 서울대학교병원 원목실장) 가톨릭평화신문 2022.06.12 발행 [1666호]
▲ 김문희 신부
예전에 오랜 시간 저와 대화를 했던 한 형제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형제님과 저는 임종 전까지 몇 달가량을 병상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속에서 살아왔던 지난날을 돌아보았고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성찰을 나누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병실 창가에 서 계시는 형제님을 보고 다가갔는데, 유난히 표정이 즐거워 보였습니다. 평소 병환의 고통으로 힘든 표정을 감추기가 힘드셨는데, 그날은 제가 병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주셨습니다.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웃음의 이유는 아주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던 자녀들과 통화를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자녀들의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던 형제님의 평소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자녀들을 만나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무엇을 함께 할지 말씀하시며 연신 미소를 띠는 형제님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가족과의 통화 한 번이 그 어떠한 신비로운 체험보다 커다란 기적처럼 밝게 빛났습니다. 비록 말로써 표현하지는 않았어도, 형제님의 한 마디 한 마디 안에 하느님께 대한 감사함도 깃들어 있었습니다. 형제님의 말씀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병의 고통도, 병상의 외로움도, 그간 살아온 인생의 여러 가지 고뇌와 번민도 다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살아내야만 하는 인생의 굴곡들은 때때로 가족 서로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대할 수밖에 없게 강요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이유에는 우리 각자의 죄와 잘못도 있을 것이지만, 가족이라는 관계 때문에 타인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나누거나 화해하기 힘든 모습들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형제님의 미소를 보며 우리 모두의 내면 근원에는 가족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과의 근원적인 관계를 원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처럼, 태어난 순간부터 연결될 수밖에 없는 가족과의 관계는 우리 존재 속에 영원한 갈망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형제님께서는 임종 전에 자녀들과 만나 화해와 사랑의 시간을 가지셨고, 저도 그 모습을 감동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형제님의 행복했던 그 미소가 가끔 기억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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