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종국 시인 / 물의 판화版畫
흩어진 물방울이 상형문자를 그린다
순음이 입을 오므리고 후음이 동그란 집을 짓는다 누군가 풀잎에 걸어놓은 듯 물로 새긴 글씨 고립된 서로 다른 기호가 새로운 문장을 만들고 있다
물의 입술이 모여 맨 처음 이야기를 써나간 흔적 호흡 사이로 스며들 것만 같은 무색, 무취의 언어
지상에 없는 낯선 문장, 웅크린 원형原形의 말들이 당신을 찾고 우리를 읽는다
부서진 기호 체계의 파편 모든 생명의 서문을 써내려 왔을 목숨의 언어이자 생태계의 방언
물의 판화를 해독하는 밤 뼈 없는 갑골 문자가 지금 내 몸속에 기록되고 있다
계간 『시와 문화』 2022년 여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백겸 시인 / 대전시 테미공원, 그 옛날 푸른 동산 (0) | 2022.11.01 |
---|---|
황상순 시인 / 저 홀로 더욱 깊어지는 외 1편 (0) | 2022.11.01 |
장석남 시인 / 나무 속의 방 외 1편 (0) | 2022.10.31 |
박시하 시인 / 슬픈 무기 외 1편 (0) | 2022.10.31 |
최승철 시인 / 꼬리 잘린 꼬리 외 1편 (0) | 2022.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