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현 시인 / 작은 발
지하철 통로 쪽에서 할머니 음성이 들려왔다 애기 엄마, 저기 자리 났으니 가서 앉아요 목례하고 빈자리로 걸어가 앉고 보니 그 생소한 애기엄마! 소리가 귀에 울려 가만, 만삭의 배 위에 손을 올린다
꽃 모빌을 올려다보며 누워만 지내다 아기는 어느 날 훌쩍, 몸 뒤집는다 겨우겨우 몸을 흔들며 발뒤꿈치 바닥에 내려서기까지는 또 한참 걸린다
시누이가 택배로 보내온 보행기 긴가민가 무심히 앉혀본다 세상에 나와 혼자 서 보는 첫 보행에 펄쩍 놀라 팔다리 팔랑댄다 두 발은 흠집 하나 없는 봉숭앗빛이다
우주선 타고 달나라에 도착한 첫걸음보다 큰 경이다 이 행성에 와 내딛는 최초의 몇 걸음 위험한 소행성처럼 모기장이며 베개며 이부자리에 부딪힌다 흔들리는 모빌을 잡으려고 나아가는 작은 발
가만, 나는 무중력의 걸음이 빠져나간 배를 만져본다
권지현 시인 / 숲 해설가
휘돌던 매 부리내린 능선에 나무구름 플구름 흐르고 바위틈 얼비치는 물빛 건너온 숲 해설가 어깨에 날아와 앉는, 옥색긴꼬리산누에나방 산초나무 나란히 사람들 멈추어선다
저기 양 팔을 층층이 펼친 건 층층나무구요 이건 누리장나무, 뒷간에 심어 냄새를 중화했지요 잎을 뜯어 넘새 맡아보세요
산뽕나무 가지에서 머리 들고 돌아보는 구름표범나비 애벌레, 눈 사이 일렁인다 잎새 건네받은 얼굴에 푸른 수액이 돌아 촉지도 읽듯 나뭇결 더듬대며 쓸어보는 사람들, 양평 봉미산이 들어올린 잣나무 사이로 다래덩굴 타고 내린다 은빛 가지 틈틈 부신 해, 머리 위에서 화선지를 펼치고 바람에 결 다듬은 잎새를 뒤집는 숲으로 호랑지빠귀 푸르르르 날아올라 촘촘히 타래 풀리는 빛,
나무부리 밑으로 플러그를 꽂는다 산 아래 굽어보던 자작나무가 비탈 얽어내린 뿌리를 땅껍질 위로 차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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