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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준철 시인 / 단석사(斷石寺)*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3.

강준철 시인 / 단석사(斷石寺)*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숨 가쁜 산정을 오르게 하였는가?

 

그것은, 봄부터 저 깍아지른 바위 틈에서

나를 손짓하던 눈부신 철쭉꽃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새벽부터 내 혼을 흔들어 저승으로 끌고 가던

저 아름다운 뻐꾸기의 노랫소리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산 구비마다 비켜서서 내 유년을 되살아나게 했던

저 찔레꽃의 쏘는 향기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내 타는 듯한 입술과 혀와 목구멍을, 가슴을,

발끝까지 시원하게 적셔주던 샘물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씻으며 나무 밑에 섰을 때, 어디선가 불어와

내 살갗을 스쳐간 한 줄기 시원한 바람, 그 바람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언제부턴가 내 머리 속을 울리던 알 수 없는

꿀벌의 잉잉거림 같은 것이었을까?

 

아, 그것도 아니었네. 그 아무것도 아니었네.

그것은 저 캄캄한 바위를 자르고 억겁을 말이 없는 당신의

그 환한 미소였네.

그 눈부신 날빛이었네.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절로 『삼국유사』에 김유신 장군이 자신의 수련을 알아보기 위해 칼로 바위를 치니 바위가 두부쪽같이 갈라졌다고 하는 전설이 있음.

 

 


 

 

강준철 시인 / 미루(美柳)나무 (Ⅱ)

 

 

절단하면 절단할수록,

더욱 싱싱한 자유를 뿜어 올리는 너.

미루나무여!

너는 나의 신이다.

너의 머리에는 언제나 자유를 노래하는

새들이 깃을 친다.

 

네 육신이 동강나 골짜기에

버려졌을 때도 너는

결코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놈들이 네 몸에

못을 치고, 칼로 껍질을 벗겨 갔을 때도

그 아픔을 안으로 다스리며, 결코

진리를 부인하지 않았다.

 

언제나 하늘만 알고

푸르게 푸르게 살아 온 너,

하늘 그리워, 하늘 그리워,

주리 틀려도 아니오만 부르짖으며

조선의 선비로 살아 온 너.

 

불쌍한 새들의 보금자리와

쉴 곳을 마련해 주고,

몸을 흔들어 노래도 불러 준 너.

미루나무여!

착하고 아름다운 미루나무여!

 

너는 나에게

한 다발의 은빛

유년이나 돌려 다오.

 

 


 

강준철 시인

경북 성주에서 출생.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및 동아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 2003년 《미네르바》  봄호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바다의 손』 『푸조나무가 웃었다』 『부처님, 안테나 위로 올라가다』 『나도 한번 뒤집어 볼까요?』, 『꿈서사문학 연구』가 있음. 부산여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 퇴임. 현재 한국문협, 부산문협, 부산시협, 미네르바 작가회 회원, <시와 인식> 동인회 회장, 우리말글사랑행동본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