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철 시인 / 단석사(斷石寺)*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숨 가쁜 산정을 오르게 하였는가?
그것은, 봄부터 저 깍아지른 바위 틈에서 나를 손짓하던 눈부신 철쭉꽃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새벽부터 내 혼을 흔들어 저승으로 끌고 가던 저 아름다운 뻐꾸기의 노랫소리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산 구비마다 비켜서서 내 유년을 되살아나게 했던 저 찔레꽃의 쏘는 향기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내 타는 듯한 입술과 혀와 목구멍을, 가슴을, 발끝까지 시원하게 적셔주던 샘물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씻으며 나무 밑에 섰을 때, 어디선가 불어와 내 살갗을 스쳐간 한 줄기 시원한 바람, 그 바람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언제부턴가 내 머리 속을 울리던 알 수 없는 꿀벌의 잉잉거림 같은 것이었을까?
아, 그것도 아니었네. 그 아무것도 아니었네. 그것은 저 캄캄한 바위를 자르고 억겁을 말이 없는 당신의 그 환한 미소였네. 그 눈부신 날빛이었네.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절로 『삼국유사』에 김유신 장군이 자신의 수련을 알아보기 위해 칼로 바위를 치니 바위가 두부쪽같이 갈라졌다고 하는 전설이 있음.
강준철 시인 / 미루(美柳)나무 (Ⅱ)
절단하면 절단할수록, 더욱 싱싱한 자유를 뿜어 올리는 너. 미루나무여! 너는 나의 신이다. 너의 머리에는 언제나 자유를 노래하는 새들이 깃을 친다.
네 육신이 동강나 골짜기에 버려졌을 때도 너는 결코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놈들이 네 몸에 못을 치고, 칼로 껍질을 벗겨 갔을 때도 그 아픔을 안으로 다스리며, 결코 진리를 부인하지 않았다.
언제나 하늘만 알고 푸르게 푸르게 살아 온 너, 하늘 그리워, 하늘 그리워, 주리 틀려도 아니오만 부르짖으며 조선의 선비로 살아 온 너.
불쌍한 새들의 보금자리와 쉴 곳을 마련해 주고, 몸을 흔들어 노래도 불러 준 너. 미루나무여! 착하고 아름다운 미루나무여!
너는 나에게 한 다발의 은빛 유년이나 돌려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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