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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종국 시인 / 빈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4.

박종국 시인 / 빈집

 

 

빈집은 빈집을 기다리고

적막은 정수리부터 허물을 벗고 있다

 

바지랑대 끝에 앉아 꽁지만 까닥거리고 있는 잠자리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빈집의 하루를 겹눈으로 살피는

 

끊어질 듯 당겨진 시위가 탱탱하다

금방이라도 정수리를 향해 화살을 날려 보낼 것 같다

 

 


 

 

박종국 시인 / 산그늘

 

 

산은 깊어져 있었다

그늘도 깊었다

 

바위에 눌어붙은 이끼에서는

푸르른 냉기가 번져 나오고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몸부림치는 떨림이 산새를 울리는

 

산울림과 바람 사이

 

산은,

입은 옷이 부끄러운 듯 누워 있는 무덤처럼 깊고

발가벗은 채 짙어 가는 그늘은 알 듯 말 듯한 비밀처럼

제 살을 뿌리들에게 내어 주고 있는

 

산의 품속을 파고들어

내 몸 떨리는 소리를 듣는

나무의 그늘과 스며든 여광에 얼룩진 바위

보랏빛 눈동자가 야무지게 보이는

 

뿌리처럼 평온해지는

무한의 품 안 같은

 

 


 

박종국 시인

1948년 충북 괴산 출생.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집으로 가는 길』과 『하염없이 붉은 말』 『새하얀 거짓말』 『누가 흔들고 있을까』 『숨비소리』가 있음. 2015년 조지훈문학상, 2016년 시작문학상 수상. (주)대원색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