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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전다형 시인 / 흑진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10.

전다형 시인 / 흑진주

 

 

네가 내게 건너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둠을 굴리며 왔을까

파도치는 슬픔을, 말랑한 눈물을, 까칠한 별빛을,

굽이굽이 애오라지 흘러은 강물의 비린내를,

밀물과 썰물 받아 쟁이며 건너왔을,

뜨거운 화엄의 길

수억 겹 인연을 밀어내고 싸안다 철썩이었을 길

속살은 또 얼마나 저미고 베이었을까

모가 깎이고 등글어지기까지

바다는 눈부신 어둠을 꽃피웠다

세속의 잣대로 읽는 흠집투성이

품어온 것이 다 길이 되는 흔적들,

고스란히 받아 안은 바다의 상처가 꽃이다

흠 많은 흑진주의 사랑이 나를 흠 잡는다

점...점...점, 숭숭 구멍 뚫린 내안의 길

사랑의 능선을 돌아은 비단길

어둠을 굴리고 굴려 찾아온 연금의 길

세상 바다를 다 품고 찾아온 상처의 길

뭍으로 통하는 어둠의 눈동자를,

나는 너를 바다의 사리라 부른다

 

 


 

 

전다형 시인 / 우리의 사회학

 

 

고삐 풀린 말이

말뚝 주위를 맴돌았다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고

잠이 거칠어졌다

 

꿀잠마저

우리 바깥까지 걷어차였다

 

말이 날뛰던 우리가

쩍쩍 실금이 갔다

 

말과 말뚝 사이

우리와 나 사이

서로를 길들이려

안간힘을 썼다

 

말뚝은 심장에 깊이 박히고

고삐는 코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고투 잡히지 않으려는 말이 넘본

우리의 바깥 세계는

 

고삐 풀린 야생마들의 축제장

말 잔등에 올라 탄 말이 휘두른 채찍

 

흑색선동과 말잔치만 무성,

무성 우거지지

 

말은 생물이어서 온도차에 민감한 동물

 

우리를 벗어난 말 잔등에 올라탄 기수

바람이 바람을 몰아가기도 하지

속도는 휘두르는 채찍에 달렸지

 

우리는 우리가 뱉은 말에

뒤통수를 맞기도 하지

 

우리를 열고 풀어 놓은 말

위험한 짐승이 빠져나간 우리는

 

입단속에 들어갔다

 

 


 

전다형 시인

경남 의령 출생.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수선집 근처〉가 당선되어 등단. 2012년 첫 시집 「수전집 근처」. 2012년 제12회 부산 작가상 수상. 부산 부경대학교 대학원 박사 수료. 연구저서로 「한하운 시의 고통연구」. 2020년  시집 「사과상자의 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