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형 시인 / 흑진주
네가 내게 건너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둠을 굴리며 왔을까 파도치는 슬픔을, 말랑한 눈물을, 까칠한 별빛을, 굽이굽이 애오라지 흘러은 강물의 비린내를, 밀물과 썰물 받아 쟁이며 건너왔을, 뜨거운 화엄의 길 수억 겹 인연을 밀어내고 싸안다 철썩이었을 길 속살은 또 얼마나 저미고 베이었을까 모가 깎이고 등글어지기까지 바다는 눈부신 어둠을 꽃피웠다 세속의 잣대로 읽는 흠집투성이 품어온 것이 다 길이 되는 흔적들, 고스란히 받아 안은 바다의 상처가 꽃이다 흠 많은 흑진주의 사랑이 나를 흠 잡는다 점...점...점, 숭숭 구멍 뚫린 내안의 길 사랑의 능선을 돌아은 비단길 어둠을 굴리고 굴려 찾아온 연금의 길 세상 바다를 다 품고 찾아온 상처의 길 뭍으로 통하는 어둠의 눈동자를, 나는 너를 바다의 사리라 부른다
전다형 시인 / 우리의 사회학
고삐 풀린 말이 말뚝 주위를 맴돌았다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고 잠이 거칠어졌다
꿀잠마저 우리 바깥까지 걷어차였다
말이 날뛰던 우리가 쩍쩍 실금이 갔다
말과 말뚝 사이 우리와 나 사이 서로를 길들이려 안간힘을 썼다
말뚝은 심장에 깊이 박히고 고삐는 코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고투 잡히지 않으려는 말이 넘본 우리의 바깥 세계는
고삐 풀린 야생마들의 축제장 말 잔등에 올라 탄 말이 휘두른 채찍
흑색선동과 말잔치만 무성, 무성 우거지지
말은 생물이어서 온도차에 민감한 동물
우리를 벗어난 말 잔등에 올라탄 기수 바람이 바람을 몰아가기도 하지 속도는 휘두르는 채찍에 달렸지
우리는 우리가 뱉은 말에 뒤통수를 맞기도 하지
우리를 열고 풀어 놓은 말 위험한 짐승이 빠져나간 우리는
입단속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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