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판식 시인 / 눈물 속의 홍방울새
굶주림과 눈물을 운반하는 새여 나는 너에게 축복과 기쁨은 바라지도 않는다 더더욱 나는 나를 위해 순수를 아낄 요량도 없으니 끝없이 피어나는 구름의 운명에 나를 내맡겼으니 나 그대를 그리워하는 까닭은 홍방울새 되고 싶음이 아니라 홍방울새 울음소리 되고 싶음이니 갈증난 내 손바닥이 닿는 그대 먼 고장의 눈물이여
박판식 시인 /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모자와 박쥐우산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 불건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다 애완용 개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생명이 있다면 더 어울리지 않는다 내게는 딸이 없다, 나와 어울리지 않아서다
하지만 내 인생은 태어나지 않은 딸과 늘 동행하고 있다 웅덩이가 모자처럼 떨어져 있다 인생은 그 위를 지나가는 멀리서 온 구름이다 옷을 입은 개가 맨발일 때 이 경이로운 세상을 둘러보기 위해 얼굴이 세 개나 네 개로 늘어날 때 모자 대신 접시를 머리에 얹고 걸어도 이상할 게 없다
개업식 경품 행사로 1등 자전거에 당첨된 일이 있다 빵집 주인이 내 이름을 세 번 연속 불렀는데 끝내 나가지 않았다. 빵집은 반년 만에 폐업했고 이 시장 골목에선 흔한 일이다, 처녀 시절 아내가 키우던 개가 죽었다| 개는 죽기 직전 젖은 걸레 위로 올라갔고 자신의 똥 위로 올라갔고 이부자리 위로 올라갔고 나의 배 위로 올라갔다, 죽은 개는 나와 어울린다, 개가 죽고 문득 아들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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