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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판식 시인 / 눈물 속의 홍방울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13.

박판식 시인 / 눈물 속의 홍방울새

 

 

굶주림과 눈물을 운반하는 새여

나는 너에게 축복과 기쁨은 바라지도 않는다

더더욱 나는 나를 위해 순수를 아낄 요량도 없으니

끝없이 피어나는 구름의 운명에 나를 내맡겼으니

나 그대를 그리워하는 까닭은

홍방울새 되고 싶음이 아니라

홍방울새 울음소리 되고 싶음이니

갈증난 내 손바닥이 닿는 그대 먼 고장의 눈물이여

 

 


 

 

박판식 시인 /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모자와 박쥐우산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 불건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다

애완용 개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생명이 있다면

더 어울리지 않는다

내게는 딸이 없다, 나와 어울리지 않아서다

 

하지만 내 인생은 태어나지 않은 딸과 늘 동행하고 있다

웅덩이가 모자처럼 떨어져 있다 인생은

그 위를 지나가는 멀리서 온 구름이다

옷을 입은 개가 맨발일 때

이 경이로운 세상을 둘러보기 위해 얼굴이 세 개나 네 개로 늘어날 때 모자 대신 접시를 머리에 얹고 걸어도 이상할 게 없다

 

개업식 경품 행사로 1등 자전거에 당첨된 일이 있다

빵집 주인이 내 이름을 세 번 연속 불렀는데

끝내 나가지 않았다. 빵집은 반년 만에 폐업했고

이 시장 골목에선 흔한 일이다, 처녀 시절 아내가 키우던 개가 죽었다| 개는 죽기 직전 젖은 걸레 위로 올라갔고

자신의 똥 위로 올라갔고 이부자리 위로 올라갔고 나의 배 위로

올라갔다, 죽은 개는 나와 어울린다, 개가 죽고 문득

아들이 태어났다

 

 


 

박판식 시인

1973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1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밤의 피치카토』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날개 돋친 말』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가 있음. 2014년 김춘수 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