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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창길 시인 / 올리브소녀 외 1건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18.

문창길 시인 / 올리브소녀

 

 

내 이름은 올리브 소녀

삭마른 바위언덕에서 불타는 평화나무를

애설피 바라보고 있다

 

그런 이 소녀의 처연한 모습을 바라보며

코웃음으로 킥킥거리는 이스라엘 병사의 총대가 무겁

나는 내 이름으로 올리브나무를 심고 싶다

올리브로 상징하는 푸른 평화나무를 가꾸고 싶다

저 적의의 병사가 내 가슴에 총구를 들이댄다 해도

몇 그루의 올리브나무를 내 마음의 언덕에 심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짝사랑으로라도 원수를 사랑하고 싶다

아니 그도 나를 사랑할 것이다

우리의 피끓는 젊음이 올리브나무를 심게 할 것이다

우리의 피끓는 젊음이 평화나무를 사랑하게 할 것이다

나의 고향은 올리브가 알차게도 열리는 팔레스타인 땅

거친 손으로 땅을 파는 아버지의 희망이

찌그러진 양동이에 물을 나르는 어머니의 성근 땀방울이

나의 행복을

꿈을

사랑을 가꿀 것이다

 

나는 평화를 위한 올리브일기를 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총을 보며 자랐다

우리는 관찰해야 하는 것은 나무이거나 꽃이 아니었다

철조망이거나 탱크이거나

하늘을 무섭게 나르는 전투기이거나

열기도 식지 않은 탄피로 장난감을 삼는

여섯 살 동생의 천진한 손장난을 보았다

그리고

여섯 명의 가족을 사랑하는 예순의 아버지가 있었다

열네 명의 가족을 지키는 마흔아홉의 거친 아버지가 있었다

어느 날 올리브나무를 심고 있을 때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공격으로 젖이 흐르는 땅을 뺐긴

무하마드 아저씨가 있었다

올리브나무는 우리의 무하마드 아저씨를

참으로 슬프게 지켜보았다

그 옆엔 망연한 어머니들이 함께 서 있었다

그리고 조국 팔레스타인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늘 올리브나무 그늘 아래서 행복했다

올리브 열매를 따고, 그 열매로 음식을 나누고

그리고 춤 추며 사랑을 하고 평화를 노래했다

나의 올리브 일기는 늘 평화를 사랑하는 얘기로

어둠보다 더 하얀 글씨로 그렇게 적었다

 

그래서 나의 이름은 평화를 심는 올리브 소녀이고 싶다

그 평화나무가 자라서 붉은 열매를 맺을 때

우리의 사랑은 익어 갈 것이다

우리의 평화는 저 거친 땅에서 무성하게 피어날 것이다

올리브를 심는 내 꿈 많은 가슴에서

불현듯 따뜻한 핏줄기 같은 평화가

꽃으로 피어 날 것이다

 

 


 

 

문창길 시인 / 능곡동 임석이뎐․1

 

 

 그는 늘 활기찬 동네 친구다 알게 된지 서너 달 밖에 안됐지만 그의 몸엔 다혈질과 순박함이 섞인 생기 가득찬 인물이다 얼마 전 다니던 일자리 없어져 치킨집 야간배달부나 해야될 것 같다며 살아갈 걱정을 토해 놓는다 늘상 우리는 만날때마다 생맥주집에서 500cc를 들이키며 집안 얘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런데 임석이는 요즘 조급증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는 투다 그 사정이야 나와 똑같지만 내가 뭐라 희망스런 대답을 해줄 수도 없고 내 앞길도 막연한 속내를 다 털어낼수야 없지만 어쨌든 그에게 막막하게 닫혀있는 세상문을 여는데 도움될만한 표현을 찾아야 한다

 

 그의 삶의 무기는 손재주이다 누가 쓰다버린 가구나 전자제품, 헌옷 등을 모아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솜씨가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어느 날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형님 선물 하나 드릴테니 만나자는 것이다 무엔가 싶어 동네 호프집에서 보기로 했다 그는 작은 용달차를 몰고 의기양양하게 와서는 짐칸에 실린 식탁을 내리며 주절주절 설명한다 동네 어느 집에선가 쓸만한 물건 하나 버려진 것을 다듬고, 닦고, 꾸며서 내심 형 생각하는 양 가져온 것이다 순박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한 친구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집에 들여놓고 가까운 생맥주집으로 향했다

 

 임석이는 쉬지않고 말을 쏟아낸다 강원도 고성 군부대 신문 돌리던 일, 아파트단지 자율방범대원으로 활동했던 일, 미화원으로 거리를 쓸다 차에 치인 일, 시민단체에서 일을 돕던 경력 등을 신나게 풀어내고 있다 그는 다양한 취업경력과 사회이력을 열거하다 문득 씨이~바아알하고 욕을 내뱉는다 당황한 나는 진정시키며 왜 무슨 사정 있냐고 묻자 사십몇년을 그야말로 자기처럼 뭣빠지게 살아온 인생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하고 냅다 고함친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몇 점 부끄러운 기분으로 그를 다독이다 맞다 이눔의 나라꼴이 엉망이지 그래 경제 잘할거라 뽑힌 엠비대통령 수~운 엉터리지 4대강이나 파헤치고 왜놈들한테 뒤통수나 터지고 젊은 오바마에게 설설거리고 이거 대한민국 절단나는 것 아니냐 에라이 어느덧 몸에서 높아지는 알콜분포도와 분노 섞인 내 목소리에 친구놈의 흥분이 잦아들기 시작한다 임석이 한잔 더 마셔

 

 


 

문창길 시인

1958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 1984년《두레시》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철길이 희망하는 것은』 『북국독립서신』 등이 있음. 현재 『창작21』 편집인 겸 주간. 『작가연대』 주간.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회원. 창작21작가회 대표. 다문화외국인창작네트워크 대표. 도서출판 들꽃 대표. 계간 <불교문예>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