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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지영 시인 / 월광 소나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19.

권지영 시인 / 월광 소나타

 

 

어스름이 내려앉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울기 좋은 골목 앞에 먼저 선 달이 앓고 있다.

피아노 음색이 짙은 코발트 하늘 속으로 에 그렁그렁 일렁이며

하루의 눈물을 또 저만큼 참고 있었을까

 

철제 대문 손잡이에 매달린 끈을 잡고 잡아당겨

대문과 마주 보고 있는 작은 방의 현관문

그 안으로 쥐구멍 숨어들듯 기어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잠을 청한다.

 

다행이다. 대문을 걸어 잠그지 않은 주인의 마음에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잠입하려 한다.

노란 달빛을 묻히고 들어오다 가루를 흘리진 않았을까

겉옷을 털고 신발을 소리 없이 벗었던가.

인기척에 들뜬 방문이 열리지 않기를 숨 참으며 기도한다.

내일 날이 새면 다시 흔적을 지우듯 방 한 칸과 이별을 해야 할까.

 

모두가 떠나버린 고흐의 노란 방에서 사랑과 우정을 노래로 만든다.

달을 이고 떠오르는 바람이 되어

달 속으로 걸어가야 한다.

 

성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으니

멀리 가보리라, 더 살아야 한다.

 

 


 

 

권지영 시인 / 아름다워서 슬픈 말

 

 

당신과 헤어지고 돌아와

아름답고 슬픈 시간들을 헤아립니다.

 

소풍

 

빗물

 

사랑

 

아침이면 다시 뜨는 해처럼

밤이면 다시 뜨는 별처럼

사라짐이 없다면

그 말들이 아름답지 않겠지요

더는 슬프지도 않겠지요

 

 


 

권지영 시인

1974년생 울산 출생. 경희대 국제한국언어문화학과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전공. 2015년 《리토피아》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붉은 재즈가 퍼지는 시간』 『누군가 두고 간 슬픔』과 동시집 『재주 많은 내 친구』,『방귀차가 달려간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