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지관순 시인 / 너무 시끄러운 고독*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25.

지관순 시인 / 너무 시끄러운 고독*

 

 

열매가 절정에 가까워질 때

나무는 생각한다 나의 부서질 듯한 노동을 사람들은

왜 축복이라 부르는 거지

 

마음이란 들어갈 땐 도둑 빠져나올 땐 주인

하지만 뒤통수뿐이어서

들어오는 중인지 빠져나가는 중인지 알 수 없다

 

불을 지키려는 난로의 마음과

불길을 잡으려는 소방관의 마음이 합쳐져

하나의 도시가 완성된다

 

길을 찾는 사람들

길을 잃으려는 사람들

길 같은 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서로 찧고 뒹굴고 쥐어짜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식당과 공사장을 지나 쇼윈도에 어른거리는

집시의 얼굴과 마주치는

광장 한복판

 

올리브나무와 흡사하게

자신을 꽉 껴안은 사람들이 압착기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보후밀 흐라발

 

웹진 『시인광장』 2022년 9월호 발표

 

 


 

지관순 시인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제 32회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 우수상 수상. 제 15회 안산 전국여성 백일장 장원. 제10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 2015년 《시산맥》으로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