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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문경 시인 / 가진 적 없는 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27.

이문경 시인 / 가진 적 없는 돌

 

 

마당에서 공기놀이를 했네 높이 올릴수록 더 많은 돌 가질 수 있었네

계집아이는 혼자였네 돌로 만든 城이 여자아이를 지켜주었다네

혼자라는 건 편안한 불안, 혼자라는 건 자신의 온기로 공깃돌

데우는 것이라고, 다가오는 어둠이 알게 해 주어서 무서웠네

그런 밤이면 풀 먹인 이불홑청을 이마까지 끌어올려도

잠이 오지 않았네

 

마당에서 공기놀이를 했네 높이 올릴수록 더 많은 돌 가질 수 있었네

계집아이는 혼자였네 돌로 만든 城이 여자아이를 지켜주었다네

놓쳐버린 돌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알 수 없는 밤이 지나면

반짝이던 것은 움켜쥔 손 펴기도 전에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다네

너무 많은 것들은 너무 늦게 알게 된다네

 

마당에서 공기놀이를 했네 높이 올릴수록 더 많은 돌 가질 수 있었네

그러나 그 돌, 버려야만 가질 수 있는 돌이었네

 

-제9회 시작시인상

 

 


 

 

이문경 시인 / 강물에서 건져 올린 눈사람

 

 

어떤 눈사람 밖의 세상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눈사람만 남았다

 

눈을 뜨면

너의 눈동자에

두 개의 빛, 눈사람이 떠올랐다

 

너의 눈을 들여다본다는 건

잃어버렸던 눈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그래서 네가 눈물을 흘리면

나도 따라서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눈사람은 따라 우는 습관이 있다

 

손가락으로 약속을 걸면

너의 손이 팔레트처럼 열려 있다

잔설 녹아내린 흔적이 손바닥에 남는다

 

오늘 어떤 눈사람은 팔 하나를 잃었지만

너를 껴안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꼽아 보면 네가 덜어 쓴 물빛 색깔이 흘러내린다

물이 다시 원색인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양파 조각을 입에 물고 양파를 썰었다

너와 껴안을 때, 눈사람은 울 수 있다

 

밤사이 내리는 빗물로 다리가 녹는 중이다

아침이 되어 문을 열고 나가면 너는 보이지 않는다

 

몸을 벗어 버리고 원색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자신의 눈물로도 눈사람은 사라질 수가 있다

 

없는 것을 본다는 건

있었다는 것에 하나를 더 보태는 것

 

가끔 누군가

나를 오래 지켜보는 것이었다

내 눈동자 속 눈사람이

 

눈사람이, 눈사람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시집 <강물에서 건져 올린 눈사람>

 

 


 

이문경 시인

1963년 경북 울진에서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2011년 계간 《시작》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강물에서 건져 올린 눈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