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인 / 소리의 귀
마하(mach)라는 말이 있기 전 소리가 있었다 빛의 속도로 오는 소리 귀로는 들을 수 없는
눈동자에 소리의 귀가 있어 동공은 모든 소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빛의 속도로 달려와 소리의 고막을 울리는 마하,
거미줄에 바람이 잘려나가는 소리, 아지랑이 타오르는 소리, 소리를 지우고 가는 안개소리, 모래톱을 향해 달려오는 파도의 발굽소리, 수평선 위에 몸을 태우는 아침 햇살의 웃음소리
무수한 소리 소리 소리
가장 듣고 싶은 소리 빛의 소리보다 빠르게 달려와 마음을 뚫고 달아나는 그대 소리의 소리를 속에 담은 내 마음의 귀!
김필영 시인 / 누가 꽁치를 표절 했나
갓 구운 꽁치 한 마리 고도의 설계로 만들어졌음이 분명하다 등선에서 배지느러미 쪽으로 말아 감아 줄 당기기 하듯 당겨진 곡선의 내각들 바다 속 수압을 견디며 잠수하는 데 용이할 것이다 물살을 갈랐을 야무진 뺨 위로 심해 속을 꿰뚫어 보던 눈을 부릅뜨고 있다 뾰족한 머리에서 미끄러진 매끈한 몸통 끝까지 마찰계수를 줄여주던 피부에 윤기가 흐른다 등과 배의 경계, 암청색 하늘과 맞닿은 은빛 수평선 젓가락으로 허공과 바다를 가른다 몸을 곧추 세워 고속추진을 도왔을 중심 뼈 꼬리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정교하다 척추 좌우에 직각으로 뻗은 가로 뼈들 거북선 노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심겨져 있다 저 뼈가 있어 뒤집히지 않고 먹이를 벌었으리라 부채살처럼 세운 꼬리지느러미 능숙하게 방향을 바꿀 수 있게 가운데가 잘록하다 이 꼬리를 너무 휘두르다 그물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꽁치를 보면 아무래도 잠수함 설계자가 모델로 삼았을 공산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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