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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은여 시인 / 점심시간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7.

최은여 시인 / 점심시간

 

 

우리는 줄을 만들고

순식간에 줄은 늘어나 연결된다

 

기도를 할 때처럼

 

고개를 약간 숙이고

최선을 다해 먹는 동작,

이것은 말하는 동작과 구분된다

 

입으로 쉽게 들어간다는 건 참을 수 없어

 

스텐 공장 프레스에서 성형된 식판엔 아름다운 금속광이 흐르고

스텐 거울에 비친 얼굴,

우리들의 얼굴이 오목하게 담겨 있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것을 먹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누구는 나를 근로자라고 부르고

나는 나를 노동자라고 말한다

 

식당 간이 의자는 며칠을 빙글빙글 돌면서 중심잡기를 한다

예감이 잘 맞는 것이 점점 불편해진다

화를 내고 있지 않지만

대열을 저만치 이탈한 병사처럼 굴고 있다

 

오후에도 지루한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광이 죽고 찌그러진 식판 같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0월호 발표​

 

 


 

최은여 시인

1970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 경상국립대학교 역사교육과 졸업 제17회 최치원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