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기 시인 / 병실 902호 — 병문안
자정이 지나면 어제와 오늘이 잠시 뒤섞이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도 느슨해지는 시간 저승에서 잠시 짬을 내어 팔월 한가위 달빛을 밟고 어머니와 아버지 병문안 왔다가 이마도 쓰다듬어 보고 대퇴부의 통점도 짚어보고 가신다.
대퇴골에서 무릎을 거쳐 발가락까지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훑고 가던 며칠 동안의 통증이 가라앉은 걸 보면 알지 수술자리가 아물어가는 걸 보면 알지
-시집 『도화역과 도원역 사이』 2017
정용기 시인 / 노랑어리연꽃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도 있지 인연의 강이 너무 깊어 한평생을 늪에서 허우적대야 하는 생도 있지 그대는 때로 멀리 강 건너 있고 그대는 때로 물줄기 따라 흘러가고 그대에게 닿기 위해 열에 들떠 꿈속에서도 뿌리줄기를 키우지 아무리 발돋움해도 그대에게 닿지 못하는 날은 노랗게 혼절하지
노란 열망으로 온통 몰두하는 생도 있지
-시집 『어쨌거나 다음 생에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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