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원 시인 / 케냐 카페
케냐 어딘가에 케냐를 두고 나는 돌아왔다
유리창에 어리는 케냐를 떠올리며 가슴 큰 킬리만자로의 눈 속에서 하얀 자스민 꽃처럼 떠 있는 동물들이 스크린에 비칠 때 수입산 석류를 까먹던 오전
나는 지금 케냐에 와 있다 눈덮힌 녹색의 중국차를 마시고 있다 와인 맛 나는 블랙베리도 겨울엔 어쩜, 사막을 뛰어다니는 기린도 눈동자에 비친 킬리만자로도 얼룩말 마사이족의 케냐마사이AA도 좀 그래 케냐 유리창으로 하얀 치어 떼들이 몰려들고 있다
나는 석류알갱이를 터트리며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 행운이 찾아오는게 아닐까 낡은 녹색 코트 깃을 치켜오리며 케냐를 떠올렸다 눈발이 날리던날
*영화제목
정계원 시인 / 베란다가 있는 겨울
겨울 바람 사이로 고드름이 자란다 베란다에서 키우던 잉꼬가 죽었다 사라진 날개가 퍼드덕거렸지만 둥지 속 새끼가 튀어나와 자꾸 유리창에 부딪힌다 눈물이 아이들 눈 속에서 얼어붙었다 머리에 살롱수건을 쓴 엄마의 파마머리를 본 적이 있다 일그러진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새 둥지 곁에 멍하니 서 있는 퍼드덕거리는 날개를 차가운 유리창에 부딪히는 태양의 일그러진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느린 속도로 흘러나오는 레드와인이 쏟아진 시간을 채운다 까망베르치즈와 양송이로 토핑을 완성한다 이 겨울에 웃음소리로 퍼져나가 오후의 햇빛이 자글거린다 포크와 나이프를 꽂은 도미노피자 위로 환하게 핀 엄마의 웃음이 퍼져간다
정계원 시인 / 나왕케촉*의 요가
김 서린 거울을 닦듯 가부좌로 있었다 피리소리에 온몸이 복식호흡을 하고 있었다 이두박근 나무가 되고 팔이 나무를 안고 들어가고 있었다 발바닥을 잡아당기는 외발자세 천장이 끌어당기고 있었다 물구나무 선 채 구름을 받쳐든 여자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햇살 사이로 고개 내밀고 그를 보고 있었다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비누거품 축축한 혓바닥은 그녀의 알몸을 핥고 있었다 비눗방울이 꿈틀거리며 말없이 타일 바닥에 죽어 가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사월의 유언이 쓰여지고 있었다 신발이 그녀를 신고 꿈틀거리는 구름 계단을 밟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흔들리는 억새 바람 속에 관절이 서걱대고 있었다
*나왕 케촉: 티벳 출신의 세계적인 명상 음악가
정계원 시인 / 원더풀 강릉
웃음 꽃 피었네 강릉처자들 왕벚꽃 가지마다 햇살 터트리는
경포대 가는 길 왕벚꽃 피었네 강릉우체국 모퉁이에 산수유 꽃 피었네
탱자나무 꽃 마른 뒤에 강릉정보화 마을 뼝창에 팥배나무 꽃 피었네 개나리꽃 마른 뒤에
강릉도서관 창문 밖에 개복숭아 꽃 피었네 홍매화 마른 뒤에 강릉 남대천 잠수교 건너
강릉KT관사 앞에 쥐똥나무 꽃 피었네 강릉 주유소 울타리 너머 명자나무 꽃 마른 뒤에
정계원 시인 / 다도방
팔각 다기함 위에 놓여있는 귀알 분청 사발과 다기함 밑에 눌러있는 팔각 다기함 그 다기함 옆에 놓인 화로와 다관 돌돌 말린 찻잎과 팔팔 끓는 물 사이 다완 그림자와 창문밖에 비치는 햇살 책상 위에 컴퓨터와 창문 틈 다기와 책갈피 사이
탁자 위엔 오렌지 두어 개 반쪽 남은 오리와 그리고 하얀 융털
-2007년 계간《시와세계》 등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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