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 삶을 통한 사랑의 순교자 제1독서 2마카 7,1-2.9-14 / 제2독서 2테살 2,16-3,5 복음 20,27-38 또는 20,27.34-38 가톨릭신문 2022-11-06 [제3317호, 19면]
가장 낮은 곳에 요셉의원 설립해 가난한 이웃을 위한 무료 진료에 일생을 바쳤던 선우경식 원장 평신도가 걸어갈 길 몸소 증거
엘 그레코 ‘눈 먼 사람을 치유하는 예수’.
늘 그립고 존경하는 선우경식 요셉 원장님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즉시 마음이 훈훈해지는 서울 영등포 요셉의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늘 그립고 존경하는 선우경식 요셉 원장님(1945~2008)께서 안중근 토마스 의사에 이어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인 평신도로 선정되셔서, 기림 미사가 봉헌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요셉 원장님은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병은 무료로 치료해 주셨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 탓에 2005년 위암이 발병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 그는 병세가 깊어가면서, 극심한 통증으로 힘드셨지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평생 해오시던 무료 진료를 계속해 나가셨습니다. 2008년 4월 15일 의식을 잃고 쓰러지신 후, 4월 18일 선종하셨는데, 쓰러지시기 불과 나흘 전까지 미사에 참례하시고, 진료를 하셨습니다.
요셉 원장님께서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결혼까지 포기하셨습니다. 그분은 저희 수도자들이 크게 부끄러울 정도로 영적 생활, 기도 생활, 청빈 생활, 나눔 생활에 투철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노숙인, 부랑인 환자들의 육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전인적인 치유, 자활, 특히 영적인 치료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대형 종합병원에서, 아니면 개원의로서 여유 있고 편안한 삶을 사실 수도 있었는데, 요셉 원장님께서는 우리 사회의 가장 변방, 가장 낮은 곳에 병원을 세우셨습니다. 다른 종합병원에서는 우리 사회 거물급 인사, 갑부들을 VIP 고객으로 모시려고 다들 혈안인데, 그에게 VIP 고객들은 노숙인들, 외국인 근로자들, 가출 청소년들,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짧은 생애였지만 위대하고 놀라운 사랑의 업적을 남기신 요셉 원장님이셨지만, 말년에 늘 이런 고백을 서슴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그분으로부터 직접 들은 말씀입니다. “환자들에게 좀 더 잘 해주었더라면….”
요셉 원장님은 피를 흘린 순교자는 아니지만, 땀의 순교자, 일의 순교자임을 확신합니다. 우리 한국 가톨릭교회 역사 안에 피를 흘린 순교 성인들은 흘러넘칩니다. 이제는 그분처럼 사랑의 순교자, 즉 삶을 통한 증거자가 더욱 많이 필요합니다.
평신도 신앙생활의 모델
개인적으로 저는 요셉 원장님 신세를 톡톡히 진 사람입니다. 제가 하고 있던 일의 성격상 길거리를 떠돌던 아이들,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제집 드나들듯 들락날락하던 청소년들을 많이 만났었는데, 그 아이들 가운데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체면불구하고 아이들을 요셉의원으로 보내곤 했습니다. 화려한 영등포역을 뒤로하고 을씨년스런 골목길로 접어들면 보기만 해도 정겨운 요셉의원 간판이 눈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곳은 마치 훈훈한 벽난로 같은 장소였습니다.
그곳에 들어설 때마다 늘 들었던 느낌은 편안함이었습니다. 따뜻함이었습니다. 환대받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곳에서는 늘 문전박대 당하던 가난한 이웃들도 제집 드나들듯이 당당히 출입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이 모든 것보다 더 좋았던 것 한 가지는 요셉 원장님께서 그곳에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요셉 원장님, 돌아보니 참으로 자상했던 분이셨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고왔던 분이셨습니다. 관대한 분이셨습니다. 늘 무엇 하나 더 챙겨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직원 피정을 마치고 요셉의원을 나오던 때 마지막으로 뵈었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점심식사 때, 몸도 성치 않은 분이 뭘 그리 이것저것 꼼꼼히 챙겨주시던지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차 가지고 오셨냐? 차 가지고 오셨으면 아이들 먹을 것 좀 실어드릴 텐데, 다음번 오실 때는 꼭 트럭 몰고 오시라, 그래서 좀 실어가시라고. 열차 시간에 쫓겨 황급히 뛰어가는 제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시더군요. 빨리 들어가시라고 손짓해도 계속 거기 그렇게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끝이군요.
생각만 해도 너무나 아쉽습니다. 열차표, 그거 얼마나 한다고, 다음 열차 탔었더라면, 여유 있게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원장님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큰일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리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직도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요셉의원은 한마디로 이 땅의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였습니다. 떠도는 환자들을 위한 의료봉사뿐만 아니라 세탁, 목욕, 무료급식 등이 함께 이루어지던 참 교회였습니다. 더욱 저를 기쁘게 한 일 한 가지가 그곳은 한마디로 ‘나눔의 교차로’였습니다.
원장님께서 제게 하셨던 말씀에 따르면, 생필품이나 의류, 식료품 등을 기증하겠다는 전화가 오면, 일단 사양하지 않고 모든 물품들을 접수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밤늦도록 분류작업을 하고 잉여 분량에 대해서는 즉시 보다 가난한 시설이나 단체와 나눠 쓴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을 요셉의원에 보내곤 했기에, 그래서 원장님께 끼친 민폐가 만만치 않았기에 한번은 제가 인사치레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원장님, 안 그래도 일손이 많이 부족하실 텐데, 저희 아이들 너무 많이 보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 하신 원장님의 말씀은 정말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신부님, 그런 말씀 절대 하지 마십시오. 저희 병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 아이들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 저희 병원에 안 오면 저희 병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문 닫아야 합니다. 아무 걱정마시고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 많이 보내주십시오.”
살아생전 평생토록 지상의 빵, 세상의 빵이 아니라, 생명의 빵,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을 추구하셨던 선우경식 요셉 원장님께서는 분명히 지금 이 순간, 그토록 그리던 천국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주님 품안에 안겨, 그분께서 나눠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빵을 원없이 드시고 계시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또 다시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며 요셉 원장님을 기억합니다. 그는 평신도로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할 것인가를, 온 몸과 마음으로 증거하셨던 좋은 모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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