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 / 기러기가 웃는다
젊어 남편을 잃고 재가해 얻은 외아들마저 잃은 그녀 언제부터 그녀가 기러기를 기르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기러기는 매일 북쪽 하늘 언저리를 날다 그녀의 집으로 돌아온다 기러기도 마음이 있어 하늘을 서성거린다고 그녀는 말한다 하늘 끝을 날다 다시 돌아서고 마는 그 그리움의 곡면, 그녀가 기러기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오늘은 기러기가 새끼 기러기를 등에 업고 날더라고 하늘 구경을 시키더라고 그녀는 기러기 얘기에 좋아라 한다 누렇게 늙어 누운 오이 같은 그녀가 뜨락에 앉아 웃는다 날지 못하는 기러기가 웃는다
문태준 시인 / 평상이 있는 국숫집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 갔다 붐비는 국숫집은 삼거리 슈퍼 같다 평상에 마주 앉은 사람들 세월 넘어온 친정 오빠를 서로 만난 것 같다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손이 손을 잡는 말 눈이 눈을 쓸어주는 말 병실에서 온 사람도 있다 식당 일을 손 놓고 온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평상에만 마주 앉아도 마주 앉은 사람보다 먼저 더 서럽다 세상에 이런 짧은 말이 있어서 세상에 이런 깊은 말이 있어서 국수가 찬물을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큰 푸조나무 아래 우리는 모처럼 평상에 마주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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