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우 시인 / 부천에서
침묵 속에서도 세월은 가고 불볕의 부천바닥 미싱단지 언저리엔 풀잎들만 시드는구나. 이러지 말자 이러지 말자 세월은 가고, 친구들은 지금도 입술을 깨물며 꿈을 자르듯이 손가락을 자르고 쇠붙이를 깎는다. 죽으나 사나 어쨌든 이 땅 위에 발붙이고 살기 때문에 불처럼 타오르는 가슴 누르고 또 누르며, 에라 모르겠다 허리 굽혀 여기저기 기름을 붓고 벽돌을 나르고 큰 못을 박는다. 나무 끝에, 온종일 저려오는 앙상한 팔다리에 꽝꽝꽝꽝... ... ... 일어나라 마른 풀잎, 잠든 마을 구비구비 돌자갈 묵은 밭 몸부림치며, 소리소리 지르며,
양성우 시인 / 양벌리에서
온몸에 뙤약볕 쓰고 터벅터벅 양벌리 가는 길, 보아라 저 짙푸른 언덕 위엔 서울놈들 별장이 들어서는구나. 이미 젊은 아이들 다 떠난 이 골짜기 가득히 침묵만 살고, 이따금씩 으리번쩍 바람처럼 땅 투기꾼들 자가용차만 지나가네. 괜찮아 괜찮아 듣는 사람 없어도 뻐꾸기는 울고 시절이 병들어 양벌리 가는 길, 누가 알까? 보이는 것마다 남모르게 나를 울리고 풀죽은 논배미 어린 모포기들 이 가슴 송곳처럼 찌르는 것을.
양성우 시인 / 이태원에서
아직은 이 고삐 풀리지 않았으므로 나는 여전히 이리저리 떠밀리고, 이러지 말자 이러지 말자 아무리 고개를 가로저어도 웬일일까? 이 아픔이 가슴 속에 사무치는 까닭은. 끝없이 쌓이는 어둠 속에 밟히고 찢어지고 그렇다 나도 모르게 토막났을지언정 이곳은 분명히 내 땅은 내 땅인데. 무서워라 무서워라 낯선 사람들 틈에 나는 병신처럼 움츠러들고, 공연히 공연히 사시나무 떨듯 하는구나. 헬로우, 왜 그러냐고 묻지 마라. 이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진실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은 이 고삐 풀리지 않았으므로 나는 전혀 타의로 침묵하고, 우스뭐라 우스워라 발버둥을 쳐도 내 땅에서 오히려 남의 땅 한가운데 사는 것만 같으니. 이러지 말자 이러지 말자 아무리 고개를 가로저어도 웬 일일까? 온몸의 피 바닥까지 타고 이 아픔이 가슴 속에 사무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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