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 시인 / 바람 ―사람들이 나를 느끼지 않고 이해하려 하므로 그들이 두렵다* 나는 질주한다, 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원래 숨을 헐떡인다. 느리게 걷지 않는 것은 보이는 전부가 다 저장되어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다. 나는 무엇도 낳지 않았고 수억 년 전에서 왔다. 아버지가 나이고 내가 아들이다 연인이었고 음악이었고 애증이었다. 유령이었고 고독한 손결이었고 결국엔 성난 눈眼이었다. 잎사귀가 추락해버린 나무, 쓰러진 채 깜박이는 가로등, 펄럭이다 흐느끼는 간판, 브레이커가 고장 난 사랑, 피의 혁명, 그 무엇도 나와는 무관하다. 나는 누구의 울음도 원하지 않았다. 단지깨어져 버릴 관능을 동경했을 뿐 그대는 내가 해석되지 않고 나도 내가 해석되지 않고 단지 멈추지 않고 주행토록 왜곡되었을 뿐 그 무엇과도 공범은 아니다 물론 역주행은 있었겠지. 허공을 향해서도 수천 개의 뼈가 덜거덕거린다. 스산한 신음을 뿌리며 고백건대 어둠과 침묵의 덩어리인 내가 스스로 울음을 흘린 적 없다. 진훍이 목구멍까지 밀치며 들어오곤 했다. 나무와 강물과 바다와 바위와 모래가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들이쳐 나인 듯 울었다. 국경과 국경을 지나면서 혹은 해변과 산정을 지나면서 몸 안의 슬픔이 너무 많이 사냥당했다 *니진스키 『현대시』 (2020년 11월호)
안민 시인 / 저녁과 밤 사이의 Seesaw
1 너와 내가 오르내렸고 균형이 흔들리고 있었다 네 스물셋 보다 내 스물일곱이 가벼웠는가 보다 그것은 마음의 중량, 저녁은 푹푹 익어 갔고 덜 익은 감정만 네게로 기울며 쏟아지고 있었다 멀미로 울렁이던 얼굴, 내 하체의 질량이 가난하다는 게 조금은 슬펐다 그러므로 함께 포개지진 못하여 가지런하고 정숙한 네 다리 건너편에서 흔들리기만 했다 눈치 채지 못하게 조금씩 나를 흘렸던가 나는 중심에서 멀어져 더욱더 가벼워졌고 기면증을 앓았으므로 어둠에 스며들면 어느 별에라도 닿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2 추억이 많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직도 견디지 못할 만큼 심장이 아프다 추락은 어떤 예고도 없기에 캄캄한 허공에서의 체류는 막막하다 저편엔 너 대신 술 취한 또 다른 내가 있고 스물셋의 너는 여전히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새의 날개 같은 빛깔로 밤은 짙어가는데 불안이 어른거려 나는 또 가볍다 그때 네가 나를 가늠하고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내가 나를 버리고 있었는데 넌 몸이 어렸고 난 정신이 종이처럼 얇았다 옆에서 지구본이 둥근 윤회의 문양으로 회전한다 무릎을 꿇고 싶을 만큼 고독한 밤, 나는 푸른 지대를 한참 지나 기울어져 가고 지금은 나를 대신하여 시소가 삐걱대며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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