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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민 시인 / 바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1.

안민 시인 / 바람

―사람들이 나를 느끼지 않고 이해하려 하므로 그들이 두렵다*

 나는 질주한다,

 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원래 숨을 헐떡인다. 느리게 걷지 않는 것은 보이는 전부가 다 저장되어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다. 나는 무엇도 낳지 않았고

 수억 년 전에서 왔다. 아버지가 나이고 내가 아들이다

 연인이었고 음악이었고 애증이었다. 유령이었고 고독한 손결이었고 결국엔 성난 눈眼이었다.

 잎사귀가 추락해버린 나무, 쓰러진 채 깜박이는 가로등, 펄럭이다 흐느끼는 간판, 브레이커가 고장 난 사랑, 피의 혁명, 그 무엇도 나와는 무관하다. 나는 누구의 울음도 원하지 않았다. 단지깨어져 버릴 관능을 동경했을 뿐

 그대는 내가 해석되지 않고 나도 내가 해석되지 않고

 단지 멈추지 않고 주행토록 왜곡되었을 뿐

 그 무엇과도 공범은 아니다

 물론 역주행은 있었겠지. 허공을 향해서도

 수천 개의 뼈가 덜거덕거린다. 스산한 신음을 뿌리며

 고백건대 어둠과 침묵의 덩어리인 내가 스스로 울음을 흘린 적 없다. 진훍이 목구멍까지 밀치며 들어오곤 했다. 나무와 강물과 바다와 바위와 모래가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들이쳐

 나인 듯 울었다.

 국경과 국경을 지나면서 혹은 해변과 산정을 지나면서

 몸 안의 슬픔이 너무 많이 사냥당했다

*니진스키

『현대시』 (2020년 11월호)

 

 


 

 

안민 시인 / 저녁과 밤 사이의 Seesaw

 

 

1

너와 내가 오르내렸고 균형이 흔들리고 있었다

네 스물셋 보다 내 스물일곱이 가벼웠는가 보다

그것은 마음의 중량,

저녁은 푹푹 익어 갔고

덜 익은 감정만 네게로 기울며 쏟아지고 있었다

멀미로 울렁이던 얼굴,

내 하체의 질량이 가난하다는 게 조금은 슬펐다

그러므로 함께 포개지진 못하여

가지런하고 정숙한 네 다리 건너편에서

흔들리기만 했다

눈치 채지 못하게 조금씩 나를 흘렸던가

나는 중심에서 멀어져 더욱더 가벼워졌고

기면증을 앓았으므로 어둠에 스며들면

어느 별에라도 닿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2

추억이 많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직도 견디지 못할 만큼 심장이 아프다

추락은 어떤 예고도 없기에

캄캄한 허공에서의 체류는 막막하다

저편엔 너 대신 술 취한 또 다른 내가 있고

스물셋의 너는 여전히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새의 날개 같은 빛깔로 밤은 짙어가는데

불안이 어른거려 나는 또 가볍다 그때

네가 나를 가늠하고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내가 나를 버리고 있었는데

넌 몸이 어렸고 난 정신이 종이처럼 얇았다

옆에서 지구본이 둥근 윤회의 문양으로 회전한다

무릎을 꿇고 싶을 만큼 고독한 밤,

나는 푸른 지대를 한참 지나 기울어져 가고

지금은 나를 대신하여 시소가 삐걱대며 울고 있다

 

 


 

안민 시인

경남 김해에서 출생. 본명: 안병호. 동국대학교 회계학과 졸업.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제18회 부산작가상을 수상. 2013년 제2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당선. 부산작가회의 회원. 시집 『게헨나』 『아난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