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화 시인 / 사막의 뒷골목
한때 나의 추억은 바다를 건너서 사막을 빠져나왔다. 악몽 같은 항해 끝에 '조니 워커'의 숙취에 풀려난 것은 다행이었다. 얼마나 취해 있었던지 파도 거품이 솜사탕으로 보였다.
학교에서 처음 열린 운동회 때 꼴찌로 달렸던 기억이 남아서 다시는 경주에 나가지 않았다. 지는 것이 싫은 내색도 못 하고 차 시간에 늦어도 일부러 뛰지 않았다. 조바심 나는 성깔을 감추고 느긋한 표정을 지으면서 속으로 바늘을 꽃으면서
바다는 사막이었다. 목구멍이 붓도록 술을 마시고 핏발 선 눈으로 바다와 아침과 해를 굴렁쇠 굴리는 나날이 도시의 뒷골목에서처럼 거기서도 뒷길로 내몰렸다. 꿈을 안고 뛰어든 바다였는데 선상 생활이 모래처럼 삭막하였다. 그렇게 지나온 날이 또한 한때 나의 풍경이 되었다.
강세화 시인 / 봄
군시럽게 몸이 근실거리는 때가 되었다.
노란 꽃이 입을 비죽거리고
개구리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여기저기 표나게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그런 태를 살피는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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