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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재춘 시인 / 불꽃이 아프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12.

임재춘 시인 / 불꽃이 아프다

 

 

석류가 벌어진 틈으로 빛이 스민다

조심스레 한 알씩 떼어낸 자리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시계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음각으로 꽉 차게 벌어진 무늬

이맘광장 모스크 기도처, 한 벽을

그늘이 채우고 있다

촉각으로 만들어놓은 장식 앞에

사람들 엎드려 기도하고 있다

천상을 향해 높이 올라간 천장 한가운데

동그란 구멍에서 오후의 햇빛 쏟아지고 있다

그림자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

방향 바꾸고 있다 기도의 등 위로

뜨겁게 떨어지고 있다

빛살이 틈새에 꽃으로 피어난다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꽉 찬 기도의 시계가 채워지고 있다

몸속의 시계, 현재를 통과하고 있다

통과하는 몸속 불꽃이 아프다

 

-시집 『치자꽃잎 같은 시간들』에서

 

 


 

 

임재춘 시인 / 질문의 그늘

 

무엇을 바라보며 왔을까, 창가에 서니

항아리 그림이 보름달처럼 떠 있다

그늘을 배경으로 깔고

​누레진 벽을 응시하고 있다

 

벽에 걸린 소반이며 변색된 얼룩들

분화구 같은 얼룩이 언제 생겼나

나뭇가지 사이 어둑한 밤을 후벼드는 뿌연 빛이다

 

티브이 앞 반달 모양 손거울이 눈을 빛내고 있다

버리려다 쌓아놓은 질문의 흔적들

빗맞은 망치 자국 같은 그늘들

나의 질문은 누군가의 문 앞에서 서성거린다

 

극지의 어둠 속에서 어른거리는 오로라를 생각한다

 

검은 어둠을 희게 그려본다

언제부터인가 난

내 손을 잡아본다

두드러진 핏줄이 시냇물처럼 파랗다

 

 


 

임재춘 시인

1954년 충남 신도안 출생.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래된 소금밭』 『치자꽃잎 같은 시간들』. 한국시인협회 회원. 성천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