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선 시인 / 향기에도 지문이 있다
유년의 허기진 기억을 비집고 들어서네 할머니 손맛 그윽한 쑥개떡 할머니 가슴으로 빚어내는 초록 달 이었네 아늑하니 살내음 고여 있는 탯줄의 고향이었네 손끝으로 더듬어가는 먼먼 날의 푸르고 은은한 향기 한 입 베어 물면 달빛 한 점씩 씹혔네 붉은 입술엔 달빛 지문 묻어나고 입속에선 지문이 부서지는 소리 할머니 한숨이 자정을 빠져나가고 있었네 아픔과 고통이 어둠을 통과 하며 내게로 전해지는 비릿한 DNA 주름진 그늘 사이사이로 할머니의 지문이 뭉개지도록 수없이 입맞춤하던 내 어린 입들도 나를 키운 향기로 자라갔네
지하선 시인 / 그 잠의 스위치1 밤의 이마 한가운데 박힌 달의 눈꺼풀 우주 기호 나열된 잠의 버튼 꾹꾹 누른다
태초의 침묵 그 너머에서 날아온 마른번개 한줄기 길을 밝혔지만 주파수 어긋난 은하 한 자락 문틈에 끼이고 별빛의 갈피마다 바람살 맞은 신음 시간의 통점을 찌른다
자정의 실핏줄 속에서 꿈틀거리는 새벽 초침에서 떨어지는 적막을 뒤척이는데
벌겋게 충혈된 잠의 문틈으로 달그림자 얼비친 꿈의 쭉정이 푸루룩 빠져나온다
새로 돋는 갓밝이 어둠을 쪼아 먹는 날갯짓 부산하다.
-시집 『그 잠의 스위치』 2021.미네르바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수천 시인 / 팽이에게 외 3편 (0) | 2023.04.12 |
---|---|
백인덕 시인 / 저녁의 이유 외 2편 (0) | 2023.04.12 |
이동재 시인 /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외 1편 (0) | 2023.04.12 |
성태현 시인 / 무심한 선택 외 1편 (0) | 2023.04.12 |
임재춘 시인 / 불꽃이 아프다 외 1편 (0) | 2023.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