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아 시인 / 귀인
귀인이 나타났다. 가시 없는 희귀종 장미 전문가라 했다. 접근금지 밀실로 모셨다.
평탄한 길인가 맘 놓고 뛰다보면 쐐기풀 섬, 성공가도인가 질러가다보면 설산 잔도. 이런 좌표가 내 오랜 지병이었고 핏줄 찔러대는 가시였다. 귀인은 삼칠일을 기다리라 했다. 무릎뼈 그만 주저앉을 지경이었으나, 나는 탑돌이 하듯 밀실 주위를 빙빙 돌았다.
드디어 삼칠일 되는 날, 뜨거운 접근금지 족쇄를 확 열어젖혔다. 온통 장미꽃무늬와 향수로 얼룩져 있었다. 귀인은 손톱 밑에 숨겨왔던 장미가시로 벽을 뚫고 멀리 사라진 후였다.
무늬와 향수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며 장미꽃을 지켜낸 이는 가시였다. 가시가 귀인이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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