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규 시인 / 낙하산
1 몇 포기 잡풀 붙잡고 그림같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지만 단 한 줄의 깜장 크레용으로 나는 지워지고, 그리고 다시 나타나 보일 때까지 박쥐처럼 숨어 지내기만 하였다. 한 걸음씩 봄밤은 짙어 오고 있었다. 사방에서 꽃이 피고 번져 갔다. 4월과 5월의 잠자는 병동 쪽으로 혈압이 급격히 기울어졌다.
2 저지대에 살면서 불어댄 풍선,
바람 앞에 나서면 하늘로 치솟아 가던 우리의 횡경막은 얼마나 부풀까. 만유인력과 낙하 운동을 배우던 시절 측정할 수 없는 한계 밖의 공간에서부터 초가지붕 위로 아파트 옥상 위로 떨어뜨려진 돌멩이같이 가장 자유로운 곳이라던 무중력에서도 뻥뻥뻥 풍선에 구멍이 뚫려서 단 한 줄의 깜장 크레용으로 나는 지워지고 다시 하늘 끝을 어떤 색깔로 그려 놓을까. 우리의 꿈은 늘상 시계 밖으로 밀려나 있다가 어느 밤 낮은 체위로 누워 상상하면 절망인 채로 뉴턴의 사과열매만 자꾸 떨어졌다.
3 꽃들은 거꾸로 매달려서
시나브로 시나브로 시들어 갔다, 꽃들의 향기만 남기고. 마침내 그들의 향기마저 시들었을 때 나는 차라리 인력 이전의 곳으로 내리고 싶다.
박덕규 시인 / 꽃잎의 여자
작은 여자 목소리가 모기소리 같다 입도 모기 입 같다
기차는 벌판을 달리고 작은 여자 기차 소리에 묻혀 있다
작은 여자 차창에 묻은 빗방울 같다
꽃 이파리 조막손 몇 개 공중에 묻은 것 같다
온몸이 바람 되어 날아가는 것 같다
기차는 벌판을 달리고 작은 여자
바람에 날려서 생생해지는 것 같다
생생해서 그대로 벌판 같다
박덕규 시인 / 사이·2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나는 피했다
뒤축을 자갈밭에 묻고 시궁창에 코를 쳐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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