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 / 완전한 생
완전히 행복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행복의 중심에 있을 때조차 어딘가는 조금씩 불편했다 완전히 불행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불행의 중심에 있을 때조차 대책 없는 낙관이 있었으니
완전히 진실했던 적은 있었나 진실의 중심에 있을 때조차 얼마간은 나를 의심하는 병을 내려놓질 못했다 완전히 진실하지 않았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위선의 중심에 있을 때조차 몸은 알고 수면장애에 시달렸으니
완전히 사랑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결혼행진곡 속에 있을 때도 나는 어딘가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사랑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불을 끄지 않고 기다리는 아파트 벼랑 위의 불빛이 나의 등대였으니
죽을 때는 완전히 죽을 수 있다면, 깨끗한 재가 되어 타오를 수 있다면 그러나 눈을 감는 그 심각한 순간에도 의식의 한쪽은 깨어 창밖으로 스치는 구름의 말을 받아쓸 수 있다면 따라오지 않고 버티는 머리카락과 손톱과 장기 들을 기다려 줄 수 있다면
나란 늘 엇결 같은 것인가 엇결의 불일치로 결가부좌를 튼 것이 나인가 조금씩은 늘 허전하고, 부끄럽고, 불만스러웠으나 조금씩은 어긋나 있는 생을 자전축처럼 붙들고 회전하면서
-시집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에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왕노 시인 / 나는 애월로 너는 이니프스리로 (0) | 2023.06.01 |
---|---|
박수현 시인 / 그 집 외 2편 (0) | 2023.05.31 |
이원규 시인 / 달빛을 깨물다 외 1편 (0) | 2023.05.31 |
하기정 시인 / 구름의 화법 외 10편 (0) | 2023.05.31 |
이면우 시인 / 봄밤 외 3편 (0) | 202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