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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예수의 성녀 데레사

by 파스칼바이런 2010. 3. 12.

 

 

예수의 성녀 데레사

배문한(수원 가톨릭 대학장 · 신부)

 

 

가르멜 수녀회의 개혁자요 교회 학자란 칭호를 받았을 만큼 저술가로서 유명한 성녀는 1515년 3월 28일 스페인 아빌라의 상류 가정에서 태어났다.

소화 데레사와 구별하기 위해 대 데레사라고도 불린다.

 

어렬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특히 순교자전 읽기를 좋아하여, 7살 때 순교자들의 장렬한 죽음을 읽고 감동한 뒤 자기도 순교하기로 결심하였다.

오빠를 설득시켜 순교자를 내는 아프리카로 향해 가출한 적도 있었으니 어릴 때부터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2살 때 어머니를 잃은 충격이 컸으나 성모님께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며 의탁하였다.

14살 때 아버지는 딸의 교육을 위해 아우구스띠노 수녀회에 맡겼다.

그때만 해도 수녀가 될 생각은 없었으나 5년 후엔 자신의 구령을 위해 가르멜 회에 입회하였다.

입회 후 2년 만에 중병을 얻어 수녀원에서 나와 쉬면서 치료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 다시 입회하였다.

처음 15년간 그의 영성 생활은 미지근한 편이었으나 45세 때 주님의 현시를 받게 되면서 회개하여 신비적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의 자서전에 “그때까지 나의 생활은 나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후부터 나의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생활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 그가 느낀 것은 가르멜 회의 개혁이었고, 초창기 정신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당시 수녀원은 수녀가 너무 많아 수녀들 간에 경제적 불균등이 있었고, 내방객이 많고 기도 시간이 짧았다.

그 점을 고치기 위해 더욱 엄격하고 봉쇄적이고 청빈을 실천하며 묵상 기도에 전념하는 소수의 공동체로서의 수녀원으로 개혁코자 결심했다.

많은 반대와 오해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562년에는 성 요셉 새 수도원을 세웠으며, 그 후 20년간 17개의 수녀원을 설립하였고 남자 수도원 개혁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표어는 “활동하고 고통당하고 사랑하는 것”이었으며 죽을 때까지 이를 생활화하였다.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편지를 쓰고 글을 썼다.

편지 내용은 요리법, 약초에 의한 치료법, 경제와 결혼을 위한 지침, 외교적인 처세술, 농담과 훈계 등으로 꾸며져 있어 그의 다양한 지식을 말해 준다.

그의 저서 중에는 “자서전” “영혼의 성” “완덕의 길”이 유명하다.

“완덕의 길”은 영성 생활의 초보자에게, “영혼의 성”은 기도 생활을 더 깊이 하기를 원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고 그의 문장은 뛰어나 읽는 이들을 매혹시켰다.

카나다 시인 오 하간 박사는, “그는 글을 쓴 여인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까지 칭찬했다.

그의 저서는 지금까지 신비 신학의 기초로서 존중되고 있으며 이는 전지하신 하느님께서 그에게 심오한 진리를 계시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대로 기록한 책으로서, 말하자면 그 안에 계신 주님 자신의 저작이라고도 한다.

그의 신비 생활의 근본이 되는 것은 “하느님 없는 나는 무요, 나에게는 하느님이 전부”라는 사상이며 모든 것에 있어서 주의 뜻을 이행함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용모와 여러 방면의 깊은 지식은 물론, 왕이나 고위 성직자에게도 바른 말로 충고할 수 있는 용감성과,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백절불굴의 투지와 사람을 다루는 재치도 겸비하였다.

일부 수녀들이 그가 원장이 되는 것을 반대하였을 때, 원장 자리에 성모상을 안치하고 수녀원 열쇠를 바치며 ‘이분이 여러분들의 원장’이라고 하여 사태를 수습하는 역량을 보였다.

그는 또한 바위에 깔려 죽은 조카를 안고 기도하여 소생시킨 일도 있고, 유명한 조각가 베르니니의 작품으로 된 그의 성상과 같이 기구 중에 불창을 든 천신이 나타나 그의 심장을 찔러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불탔다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왜 예수의 친구가 못되는가에 대해 답하길, 예수께서 고통을 주는 것이 친구를 대접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라 했다.

그는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기에 주님의 고통에 동참하기를 원했다.

“주여! 당신을 위해 고통을 받겠나이다”라고 기구하며 고통 아니면 죽음을 간청할 만큼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고통을 기원했다.

고통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임종 전에 남긴, “내 영혼아! 아무 것도 근심 말고 아무 것도 두려워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고 하느님만이 변함이 없으시다.

안내는 모든 것을 얻는다.

하느님을 얻은 사람은 그 외 아무 것도 필요치 않으며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는 말로 주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를 표현하였다.

 

1582년 10월 4일 저녁, 알바 데 또르메스에서 67세로 세상을 떠났고, 1617년 스페인 국회는 그를 스페인 주보로 선언하였으며 1622년 사후 40년 만에 시성되고 1970년 9월 7일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축일은 10월 15일.

 

우리도 성녀처럼 고통을 청하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우리가 당하는 매일의 고통과 십자가를 사랑할 줄 알아야겠다.

 


 

축일 10월15일 성녀 데레사(Tere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