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루카 복음사가 배문한 도미니꼬(수원 가톨릭 대학 교수 · 신부)
신약성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제3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저술하여 그리스도의 생활과 초기 교회 생활을 나란히 보여준 루가는, 사도 바오로께서 '사랑하는 의사'(골로 4,14), 전교사업의 '동료'(필레 1,24), 바오로가 순교하기 전 '유일한 동반자'(2디모 4,11)라고 부를 만큼 사랑받는 제자였다.
루가는 복음사가 중에서 유일한 이방인 출신이다. 그의 고향은 교육의 중심지인 시리아국 안티오키아였다. 그리스도 강생 후 40년경 안티오키아에는 신자 단체가 형성되었으니 그는 그중의 열심한 한 청년이었다. 성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가 안티오키아에서 전교를 하였을 때 그들을 알게 되고 특히 바오로를 깊이 존경하고 따랐던 것이다. 그는 의학을 공부하고 드로아에서 의사로 살아가려 하였으나 주님께서는 복음 전파라는 더 큰 사명을 그에게 주셨다.
흔히 그를 예수의 72제자(루가 10,1) 중 한 사람이거나, 엠마오로 가는 길의 글레오파의 동행자이거나(루가 24,18) 혹은 사도 필립보에게 "선생님 예수를 뵙게 해주십시오"(요한 12,21) 하고 간청한 저 이방인의 한 사람이라고도 하나 신빙성 있는 근거는 없다. 루가 자신이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루가 1,2)과 자기를 뚜렷하게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비의 복음, 보편적 구원의 복음,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 절대적 재생의 복음, 기도와 성령의 복음, 기쁨의 복음을 썼으며, 특히 착한 사마리아 사람(10,30), 잃었던 양 한 마리(15,7), 자캐오(19,5), 잃었던 아들(15,11-32) 등의 얘기를 통하여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증거한다. 또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읍니다”(루가 23,34)라고 하시며 박해자까지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 준다.
우리는 루가를 통하여 성탄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며 성모송 이외 매일 성무일도에서 외는 마리아의 노래, 즈가리야의 노래, 시므온의 노래를 배우게 되었다. 성모님에 관한 그의 기술은 성모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루가가 복음서를 쓰기 위해 예수님을 목격한 증인을 만났다면 성모님을 빼놓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려오는 전승에 의하면 루가는 의사일 뿐 아니라 화가였으며 성모님에 대한 초상화를 처음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는 초대 신자들간에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도 한다.
성 바오로가 고린토인에게 보낸 서간 중에 "우리는 디도와 함께 한 사람을 딸려 보냅니다. 그 사람은 모든 교회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 명성을 떨친 사람입니다"(2고린 8,18)라고 한 것은 그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의 겸손은 자신이 기술한 사도행전에서 자신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음에서 드러나며, 다만 우리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도 선교 사업에 일익을 담당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각 성서 저자의 상징이 마태오는 천사, 마르코는 사자, 요한은 독수리이며 루가는 희생을 표시하는 소로 묘사되고 있는 바(에제 10,14; 묵시 4,7) 이는 침착하고 강인한 그의 성격을 나타내기도 하고, 그의 복음이 성전에서 시작하여 성전으로 끝나는 데도 이유가 있다고 한다.
스테파노가 순교한 후 그의 고향 안티오키아에서 믿음을 얻은(사도 11,20) 루가는,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가 두번째 전도 여행을 할 때, 드로아스에서 그를 만나 일행이 되어 마케도니아의 필립비까지 행동을 함께 하였다(사도 16,10.12). 그리고 바오로는 이곳에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는 곧 떠나게 되었는데, 평신도인 루가에게 교회를 돌보도록 맡긴 것 같다. 이어서 세번째 전도 여행 때 바오로는 필립비를 거쳐 갔는데 루가는 여기서 다시 그 일행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갔고 이어서 가이사리아, 마지막으로 로마까지 따라갔다. 바오로가 로마에서 처음 감금되었을 때 루가는 그와 함께 있었고(골로 4,14; 필레 1,24), 다시 로마에서 감금되었을 때에도 바오로 옆에서 협력자로 그를 섬긴 단 한 사람이 루가였는데 "루가만이 나와 함께 있읍니다"(2디모 4,11)라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같이 복음사가 루가는 참으로 사도 바오로의 충실한 제자요 협력자로서 그의 순교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와 함께 있었다.
루가는 66년 바오로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그리스로 건너가 아카이아 지방에 전교하고, 다음은 소아시아 지방에 가서 주를 위해 수많은 간난 신고를 기꺼이 참아 받았다. 루가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이 충실히 주를 섬기다가 84세를 일기로 아카이아(비타니아 혹은 에집트)에서 별세한 듯하지만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 열두 사도 성당에 안치되어 있으며, 의사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축일은 10월 18일.
복음사가 루가는 온 일생을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하였다. 우리도 그를 본받아 복음의 사도들을 열심히 돕고 말과 글과 행동으로 복음을 증거하며, 선교에 있어 출판물의 중요성을 깨달아 교회 출판 사업에 협조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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