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향기] 수도회 창설자를 찾아서 - 십자가의 성 바오로
그리스도의 고난(苦難)은 가까이에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로 일컬어지는 우리들 삶 한가운데에 고난의 신비가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도록 사순절이라는 일정 기간을 정해놓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회’와 ‘예수 고난 관상 수녀회’를 설립한 십자가의 성 바오로(1694-1775 · 본명 : 바오로 프란치스코 다네이)는 예수의 생애 중 특히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도록 불림을 받았다.
성 바오로는 1694년 이탈리아 북부 오바다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바오로는 1719년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할 수도회를 창립하라는 환시를 체험하고 난 두 이듬해 40일간의 피정을 통해 영적 일기와 고난회의 첫 규칙 초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그가 회칙 승인을 받으러 교황청에 갔을 때 그는 걸인 취급을 당하여 쫓겨나게 된다. 그는 그 길로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산타 마리아 마욜 대성당으로 가서 모든 이의 마음속에 예수 고난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일으키겠다는 서원을 발했다. 이 서원은 그가 설립한 수도회 안에서 ‘고난 헌신 서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후 바오로는 동생 요한 밥티스타와 함께 은둔소에서 엄격한 생활을 하면서 수도회 설립을 계속 추진, 마침내 1741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로부터 회칙을 정식 승인받기에 이르렀다. 교황은 이 때 “교회에서 제일 먼저 설립되었어야 할 성질의 수도회가 이제야 설립되게 되었다”며 이 수도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바오로는 1775년 10월 18일 선종하기 전 거의 10여년을 병상에서 보냈다. 수천 리를 걸어 다니면서 했던 ‘순회설교(Missio)’로 얻은 관절염을 비롯하여 육신이 몹시 쇠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오로는 예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엄격한 고행과 보속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사랑은 즐거움뿐 아니라 고통까지 함께하는 ‘일치’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게 사랑과 고난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는 사랑하기에 고난을 당했으며 그 고난 안에서 넘치는 사랑을 발견한다. 즉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지고한 표현임을 확신했고, 이 신비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 같은 바오로의 영성은 동시대 추종자들에게 남겼던 훈화에서도 나타난다.
“사랑은 사랑하는 주님의 고통을 떠맡는 일치의 덕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분께로 변모시킵니다. 더욱더 깊이 슬픔이 담긴 사랑, 사랑이 담긴 슬픔, 그리고 사랑과 슬픔이 섞인 그 어떤 것이 일어납니다. 그것들은 깊이 일치되어 슬픔에서 온 사랑인지, 사랑에서부터 온 슬픔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마음은 고통 안에서 기뻐하고 슬픈 사랑 안에서 기뻐 뛰놉니다.”
또한 초기부터 수도회 창립의 소명을 부여받은 바오로는 특히 수도회 장상들에게 십자가 수난에 담긴 뜻을 구체적인 수도생활 안에서 실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것은 기도의 정신, 고독의 정신, 가난의 정신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이에 따라 자신이 설립한 수도회를 ‘예수의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부활로 넘어가는 과월(過越, 파스카)의 신비로 이해했다. 고난을 기억할 때 슬픔은 기쁨이 된다. 고난을 기억할 때 불평은 감사로 바뀐다. 고난을 기억할 때 불신은 사라지고 온전한 의탁만 남으며, 두려움은 없어지고 자신을 투신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고난을 기억할 때 인간은 자신의 무(無)를 인정하게 되고 하느님이 그를 차지하신다. 고난을 기억할 때 죽음은 그 독침(毒針)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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