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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이달의 성인] 십자가의 성 바오로(1694-1775)

by 파스칼바이런 2010. 3. 17.

 

 

[이달의 성인] 십자가의 성 바오로(1694-1775)

윤 클레멘트 신부

  

이탈리아의 오바다(Ovada)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의 신앙유산으로 이미 15세 때에 고행과 보속을 하기로 한다. 그는 1714년에 터키군과 전쟁 중인 베니스군에 입대하지만, 기도와 보속의 생활에 이끌려 명예제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여러 해를 기도하며 은거하던 중, 1720년에는 예수님의 이름과 하얀 십자가가 그려진 고난의 뱃지를 검은 옷에 단 성모님의 환시를 본다. 이 환시를 수도회 창설로 받아들인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부터 수도회 창설을 허가받은 후, 40일간의 피정을 하면서, 수도회칙을 초안한다. 처음에는 교황청으로부터 수도회 신청을 거절당하지만, 1725년에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에 교황 베네딕토 13세로부터 수련자를 받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1727년에는 교황 베네딕토 14세로부터 자신의 동생 요한과 함께 사제로 서품된다. 그는 동생과 함께 몬테 아르덴따리오에 수도원을 세우는데, 처음에는 엄격한 규칙으로 인하여 많은 수련자들이 수도원을 떠났다. 1737년에 정식으로 첫 수도원의 문을 열었고, 1741년에는 교황 베네딕토 14세로부터 개정 회칙을 승인 받는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수도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십자가와 고난의 맨발 성직수도회인 예수고난회로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간다. 총장으로 선출된 그는 이탈리아 전역을 다니며 설교하는데, 그의 설교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린다. 그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축복을 사람들에게 가져갔고, 그의 말씀과 기도를 통한 치유의 기적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훌륭한 설교가인 그는 무엇보다도 사도적 열성과 엄격한 극기에서 뛰어난 모범을 보였다.

 

그는 십자가의 신비를 살고 따르려는 자신과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에 의존하며 살기를 바라면서, 행렬, 가두선교, 철야기도, 참회예식, 희생, 찬미가, 기도 등을 실천하곤 하였다. 그는 십자가를 손에 들고 팔을 넣게 한 채,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하여 설교를 하곤 하였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회심하였다고 한다.

 

그의 고난회는 1769년에 교황 클레멘스 14세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고, 또한 고난회 수녀들이 꼬르네또에 첫 수도원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신비가, 설교가, 영적 지도자였던 그는 말년에 3년 정도 병고로 고생을 한다. 1775년 10월 18일에 세상을 떠나는데, 1867년 6월 28일에 교황 비오 9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그는 자신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적 고통을 침묵 속에서 참아내며, 즐겁고 평온한 얼굴로 십자가의 축일을 지냅시다. 고통은 사람들에게 감추어지고 지극히 선하신 하느님께만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우리의 양식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잊어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가슴 안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모든 이들이 모든 것들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축일 10월 19일 성 바오로(십자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