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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성모영보 - 레오나르도 다빈치

by 파스칼바이런 2015. 8. 20.

 

 

 

 

 

성모영보 - 레오나르도 다빈치

패널에 템페라와 유채, 98x217cm, 피렌체, 우피치

 

 

[성화에 얽힌 이야기] 즉시 떠나라

 

성모님의 일곱 가지 기쁨을 담은 7락 묵주기도를 바치던 어느 날, 기도 중에 “떠나라.”의 의미가 마음에 와 닿았다.

 

제1락은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에 대한 묵상이다. 이 소식을 마리아께 알리기 위해 대천사 가브리엘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먼 길을 떠나왔다.

 

제2락은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심이다. 성모님께서는 잉태 고지를 받고 나서 엘리사벳을 만나기 위해 즉시 길을 떠나셨다. 100킬로미터가 넘는 먼 길이라고 한다. 천사가 전해 주신 그 놀랍고도 기쁜 소식을 엘리사벳은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였을 것이라 믿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 기쁨을 전하기 위해 지체 없이 떠나셨을 것이다.

 

제3락은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심에 대한 묵상이다. 나자렛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차로도 몇 시간 걸리는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다. 성모님은 바로 이 먼 길을 여행하던 중에 예수님을 출산하셨다. 이미 만삭이 된 몸으로 먼 길을 떠나시는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여행 중에 요셉 성인께서는 성모님을 참으로 자상하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셨을 것이다. 그리고 가축이 사는 마구간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을 출산하셨다.

 

제4락은 마리아께서 동방박사들에게 아기 예수님을 보여 주심이다. 이번에는 동방박사들이 먼 길을 떠나왔다. 별을 따라 온 그들은 별이 멈춘 곳에서 세상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 경배를 드렸다.

 

제5락은 마리아께서 기쁨 중에 잃었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에 대한 묵상이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과 예수님, 이 단란한 성 가정이 파스카 축제를 위해 나자렛에서 예루살렘으로 또다시 수백 킬로미터의 여행을 떠나셨다. 축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예수님을 잃고 사흘 밤낮을 찾아 헤매셨다. 그 고통이 어떠하셨을까? 그런데 성전에서 아드님이 율법 교사들과 당당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 사건 역시 여행 중에 일어났다.

 

제6락은 마리아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사흘 동안 저세상을 여행하고 오셨다. 거리는 알 수 없으나 아주 신비로운 여행이었을 것이다. 성모님은 감내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아드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그런데 그 분께서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어머니께 모습을 드러내셨다. 아들이 군대에서 잠시 휴가를 나와도 뛸 듯이 기쁜데 죽은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으니 성모님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제7락은 마리아께서 하늘에 올라 천상 모후의 관을 받으심이다. 오! 우리의 성모님께서 이번에는 정말로 먼 여행을 떠나셨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가신 것이다. 떠남의 하이라이트다.

 

떠나야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바오로도, 베드로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 각기 다른 곳으로 떠나서 복음을 전했다. 나도 늘 떠나고 싶다. 학생들에게도 떠나라고 권한다. 내가 쓴 책들은 거의 다 여행의 결과이다. 전에는 역마살이 끼어서 여행이 팔자소관인 줄 알았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특은인 것 같다. 이 은총을 계속 베풀어 주시기를 청한다.

 

 

다빈치도 떠났다.

 

잘나가는 고향을 버리고 먼 길을 떠난 이가 있는데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이다. 다빈치가 피렌체에서 활동할 무렵 그곳은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르네상스 문명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빈치는 지체 없이 고향 피렌체를 떠나 생소한 밀라노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25년을 머물렀다. 생의 대부분이다.

 

이 그림은 다빈치가 밀라노로 떠나기 전 피렌체에서 그린 <성모영보>다. 옛 화가들치고 이 주제를 한번쯤 그려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다빈치의 이 작품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잘 그려서가 아니라 다른 이와 다르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의 외관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기후를 포함한 자연의 현상을 담고자 하였다. 그림 앞쪽에는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님께 아기를 잉태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고, 성모님은 독서 중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고 놀라고 있다.

 

그림의 핵심은 그러나 주인공인 앞의 인물보다는 배경이다. 수종을 알 수 있는 나무들, 물안개 핀 호수, 그 위에 떠 있는 희미한 배, 운무가 낀 뿌연 산. 하늘인지, 산인지, 호수인지, 구름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배경의 풍경. 다빈치는 이를 통해 자연의 현상과 본질을 그리고자 했다. 다빈치는 아틀리에를 박차고 나가 자연을 관찰했다. ‘사색하고, 관찰하고, 실험하고, 기록하라, 그려라.’ 다빈치의 모토다. 다빈치의 모든 작품은 그것의 결과물이었다. 다빈치는 호기심과 진리를 찾아 늘 떠났던 것이다.

 

[평신도, 2015년 여름호(VOL.48), 고종희 마리아(한양여자대학교 실용미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