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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천상병 시인의 귀천

by 파스칼바이런 2010. 10. 8.

 

작자 소개

 

경남 창원(昌原) 출생.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 4년 중퇴. 1949년 마산중학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추천받았고, 1952년 《문예(文藝)》에 《강물》 《갈매기》 등을 추천받은 후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67년 7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가난 ·무직 ·방탕 ·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그는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1971년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 《새》는 그가 소식도 없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그의 생사를 몰라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리던 그는지병인 간경변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막에서》 《귀천(歸天)》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의 시집과 산문집 《괜찮다 다 괜찮다》, 그림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등이 있다. 미망인 목순옥(睦順玉)이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두산 동아 백과 사전>

 

요점 정리

 

성격 : 시각적, 서술적

운율 : 3음보의 반복과 변조

어조 : 내면적, 독백적 어조

특징 :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의 정신을 세속을 초월한 달관의          세계와 조화시킴

제재 : 귀천

주제 : 삶에 대한 달관과 죽음에 대한 체관    * 체관 :샅샅이 살펴봄, 단념함

 

어휘와 구절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죽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인의 순명(順命)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이러한 순명의 태도는 '하늘'이 자기 존재가 비롯된 곳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가 '죽음'을 하늘로 돌아가는 것[歸天]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이 점을 말해 준다. 그는 죽음을 모든 것을 종말로 이끄는 돌발적인 사건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즉, 자기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가 죽음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절망적인 색채가 아니라 밝고 건강한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  '이슬'과 '노을빛'은 모두 잠깐 동안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소멸해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이 '이슬과 더불어', '노을빛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겠노라고 말한 것은 삶의 덧없음이나 허무를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처럼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시인의 소망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가 문자 그대로 무욕(無慾)과 무사심(無私心)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해 준다. 무욕과 무사심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굳이 삶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처럼 담담하게 삶과 죽음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시인은 자신의 삶을 즐거운 '소풍'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신이 천상의 세계에서 세속의 세계로 '소풍'을 나왔다가 다시 천상의 세계로 돌아가는 어린아이(천사)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구절은 자신의 맑고 깨끗한 삶에 대한 자족감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 : '아름다움'의 주체는 이 세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시인 자신의 삶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가난과 슬픔과 고통의 연속인 삶이요, 그에게 오욕(汚辱)과 가난을 강요한 세상이지만, 적어도 시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과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술은 시인이 세속적인 욕망이나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영혼의 소요자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시인이 삶과 죽음에 대해 초탈한 자세를 지닐 수 있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청정한 삶의 자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와 감상

 

< 천상병의 시에서 우리는 순진 무구(純眞無垢)와 무욕(無慾)을 읽을 수 있다. 그는 현란하거나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사물을 맑고 투명하게 인식하고 담백하게 제시한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결코 허무나 슬픔에 빠지지 않고, 가난을 말하면 서 구차스러워지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시사(詩史)에서 매우 이단(異端)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이라는 세속적 명리(名利)를 떨쳐버리고 온몸으로 자신의 시를 지킨, 진정한 의미의 순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죽음으로 해서 잃게 될 소유물들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그러한 일반적 태도와는 전혀 다른 한 사람의 모습을 본다. 그는 세 연의 서두에서 똑같은 어조로 말한다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은 물론 죽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죽는다고 말하지 않고 하늘로 돌아간다고 한다. 셋째 연의 말처럼 이 세상의 삶이 마치 한 차례의 소풍인 것처럼 그는 선선히 `돌아가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늘로 돌아갈 때 그가 동반하는 것이란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과 `노을빛' 같은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의 언젠가 있을 죽음을 선선히 받아들이기로 하였듯이, 그는 이 세상의 삶 속에서 누리는 소유물들에 별로 미련이 없다. 미련이 없으므로 집착이 없고, 집착이 없으므로 죽음을 억지로 피해 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만 읽고 만다면 아직 이 시를 충분하게 음미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선선한 태도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고 말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한껏 즐겁게 누렸기 때문일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작품 전체의 어조와 분위기는 이와 달리 어떤 애조 띤 빛깔로 덮여 있다. 분명하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 삶이란 매우 괴로운 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그 속에서 그는 가족, 친구와 더불어 넉넉하다 할 수 없는 삶을 누려 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짐작하면서 그는 새삼스럽게 그 아쉬운 삶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러나 끝없는 집착이란 얼마나 괴롭고 무의미한 것인가? 그리하여 그는 지나온 삶의 자취 속에서 소중한 기억들을 더듬으면서 그래도 자신은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았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노래하는 간결한 말씨 속에서 우리는 지나 온 삶의 괴로움과 회한을 지그시 다스리며 아름다움을 읽어 내는 맑은 눈을 본다.> [해설: 김흥규]

시인 천상병 부인 목순옥 여사 별세…歸天(2010. 8. 10)

 

 

故 천상병 시인의 한쪽 날개였던 목순옥 여사의 귀천 소식에 이 세상의 지고지순함 한 덩어리가 먼 별나라로 뚝 잘려나가는 느낌이다.

누구보다 순수하게 사랑했던 두 사람이 다시 해후하는 시간을 앞두고 왜 자꾸 목이 메이는지...

 

 

오래도록 찾아뵙지 못하고 그저 바람결에 안부 전해 듣는 걸로 위안 삼던 분의 떠나심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묵념을 올린다.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천상 시인이었던 시인의 애닯은 글귀가 떠올라 다시한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때가 되면 아무리 지난했던 세월도  한 시절 소풍 끝내듯 젖은 돗자리를 접게 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