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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좋은글모음(1)

만공스님 이야기(1)

by 파스칼바이런 2014. 2. 7.

만공스님 이야기(1)

 

 

 

 

청양에 있는 장곡사란 절에서의 일이었다. 이 절은 칠갑산이라는 산 속에 깊이 숨어 있는 사찰인데 훗날 경허가 바람처럼 구름처럼 전국을 떠돌고 다니다가 이 절에 잠시 들른 적이 있었다.

 

당시 이 절에는 그의 법제자인 만공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스승을 뵙게 되었으므로 경허가 좋아하는 곡차를 마련하고 마을 사람들은 파전을 비롯한 여러 안주들을 정성껏 마련하여 난데없이 경내에서 술잔치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선비들도 모두 참석한 술자리가 거나하게 무르익을 무렵, 만공은 스승 경허의 곁에 바짝 다가앉으면서 물어 말하였다. 만공으로서는 오랜만에 스승 경허로 부터 모처럼 술기운을 통해서라도 법문 하나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만공은 스승이 좀처럼 법문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거나하게 술이 취했을 때는 예외여서 누가 청하면 하루 종일이라도 법문을 하는 버릇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천장사에 있을 때 만공은 그러한 스승의 버릇을 익히 터득하였었다.

 

사람들이 찾아와 불법의 도리를 물으면 종일 귀머거리인 것처럼 벽을 보고 앉아 말이 없다가 누구든 술과 안주를 들고 와 법문을 청하면 단숨에 이를 들이켜고 밤이 새도록 설법하는 스승의 모습을 보고 만공은 한번 이렇게 따져 물은 적이 있었다.

 

"스님께오서는 만인 앞에 평등하셔야 할 도인이신데 어찌 그렇게 편벽하십니까. 곡차를 올리는 사람에게는 하루 종일이라도 법문을 하시고, 법문을 듣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목마른 사람에게는 어찌 하루 종일 묵언이십니까. "

 

그러자 경허는 다음과 같이 잘라 말하였다.

 

"이 사람아, 법문이라는 것은 술기운에 하는 것이지 맑은 정신에 할 짓은 못되는 법이네."

 

이미 천장사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하였으므로 만공은 거나하게 술기운이 올라 있는 스승 경허를 보자 옳지, 이때다, 하고 바짝 다가앉아 다음과 같이 물어 말하였다.

 

"스님, 스님께오서 곡차를 드셨으니 그 옛날 천장사에서 법문은 술기운에나 하는 법이다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금 마침 스님께오서 곡차를 드시고 얼굴까지 단청불사(얼굴이 단청처럼 붉게 물들었다는 농) 하셨으니 한 가지 묻겠습니다. 스님, 스님께오서는 이처럼 곡차를 마시지만 저는 술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안마십니다. 굳이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않습니다."

 

만공이 다시 상위에 올려져 있는 파와 밀가루를 버무려 지진 파전 안주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파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님, 저는 굳이 파전을 먹으려 하지도 않고, 또 생기면 굳이 안 먹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스님께오서는 어떠십니까."

 

난데없는 질문에 경허는 대답 대신 사발에 한가득 들어 있는 곡차를 단숨에 들이켜더니 빈 잔을 만공에게 건네주어 술을 따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위대한 도사님, 곡차 한잔 받으십시오. 나는 그대가 그동안 그처럼 위대한 도인이 되었는지는 전혀 몰랐네, 그려."

 

 

경허는 일어서서 제자 만공 앞에 갑자기 엎드려 배를 올리려 하였다. 당황해진 만공이 얼른 일어서서 스승을 만류하여 다시 자리에 앉히자 경허는 껄껄 웃으면서 말하였다.

 

"자네가 벌써 그런 무애 경지에 이르렀는지 내가 전혀 몰랐었네 그려, 나는 자네와는 다르네. 자네는 술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굳이 안 마시고, 이 파전이 생기면 굳이 안 먹으려 하지 않고 없으면 굳이 먹으려고도 하지 않지만, 나는 자네와는 다르네. 나는 술이 먹고 싶으면 제일 좋은 밀 씨를 구해 밭을 갈아 씨 뿌려 김매고 추수하고, 밀을 베어 떨어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고 걸러 이와 같은 술을 만들어 이렇게 마실 것이네."

 

경허는 잠시 말을 마치고 다시 술잔에 가득 따라 단숨에 이를 들이켜고, 수염에 묻은 술을 손등으로 닦아낸 후 파전 안주를 집어먹으면서 말하였다.

 

"난 또 파전이 먹고 싶으면 파 씨를 구해 밭을 일구어 파를 심고 거름을 주어 알뜰히 가꾸어서 이처럼 파를 밀가루와 버무려 기름에 부쳐 가지고 꼭 먹어야만 하겠네."

 

이때의 심정을 만공은 훗날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나는 그때 스승 경허의 말을 듣는 순간 등에서 땀이 흐르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내 견해가 너무 얕고 스승의 경지는 하늘과 같아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았다."

만공의 이와 같은 고백처럼 매사에 철두철미한 경허의 역행에는 이와 같은 철저함이 들어 있었다.

 

꿈을 꾸려면 잠을 자야만 한다. 그 꿈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며 허상이라 할지라도 잠이 들지 않고는 꿈을 꿀 수 없다. 잠이 들지 않고 깨어 있는 상태에서 어찌 꿈을 이야기할 수 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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