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공스님 이야기(2)
경허(鏡虛·1849∼1912)가 근세의 가장 위대한 선승임을 모두가 찬탄하면서도 그가 청정한 불가에서 오해를 받고 심지어 '마구니(魔軍)'로까지 불리는 것은 계율을 깨뜨리는 그의 언행 때문이었다. 수법제자인 한암은 스승 경허 화상의 행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통한 한숨부터 내쉬며 쓰는 경허 화상의 행장 (失呼鏡虛和尙行狀)'이라고 쓴 장문의 행장기는 1932년 3월 15일 한암 중원이 스승을 기리면서 쓴 명문의 기록인데 그는 행장기 말미에 다음과 같이 경계를 내리고 있다.
'만약 학인(學人)들이 경허의 마음을 따른다면 옳거니와 만일 경허의 행동을 따른다면 이는 옳지 않다.'
그리고 나서 한암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러니 가로되 화상의 법화를 배움은 옳거니와 화상의 행동만을 보고 화상을 비평함은 옳지 못함이로다. (故曰, 學和尙之法化則可 學和尙之行履則不可).'
심지어 경허 자신도 '중노릇하는 법'이라는 경문(警文)을 써서 모든 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있음이다.
'술을 마시면 정신이 흐리니 마시지 말 것이며, 음행은 정신이 갈려 애착이 되니 상관 아니할 것이요, 살생은 마음에 진심(瞋心)을 도우니 아니할 것이요, 고기는 먹으면 정신이 흐리니 먹지 말 것이며, 거짓말은 마음에 사심(邪心)을 기르니 하지 말 것이요, 도적질은 내 마음에 탐심을 키우니 아니할 것이다.
고려의 목우자(牧牛子)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재물과 여색이 앙화(殃禍)를 부르니 이 화가 독사보다 심하다. 그러므로 몸을 살펴 그른 줄 알아 항상 멀리 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이 깊은 말씀을 본받고 필히 지켜 행하여야만 공부가 순일하게 되어질 것이다...'
'중노릇하는 법'이라고 자신이 직접 쓴 글의 내용을 경허 스스로가 파계하였으니, 즉 마시면 정신이 흐려진다는 술을 자신이 즐겨 마셨으며, 먹으면 음심이 생긴다고 먹지 말라던 파와 마늘과 고기를 자신이 즐겨 먹었다. 정신이 갈려 애착이 생기고 온갖 화가 독사보다 더 심하게 생긴다는 여색에는 그 자신 가까이 하였으니 그렇다면 경허는 과연 부처인가, 마왕(魔王)인가...
부처 자신도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의 길에 가장 무서운 적이며, 가장 무서운 유혹이며, 가장 무서운 장애가 성욕이며 애욕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이 재물과 색(色)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마치 칼날에 묻은 꿀을 핥는 것과 같다. 한번 입에 댈 것도 못 되는데 어린애들은 그것을 핥다가 혀를 상한다. 모든 욕망 가운데 성욕만큼 더한 것은 없다. 성욕의 크기는 한계가 없는 것이다. 다행히 그것이 하나뿐이었기 망정이지 둘만 되었더라도 도를 이룰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애욕을 지닌 사람은 마치 횃불을 들고 거슬러 가는 것과 같아 반드시 횃불에 화를 입게 될 것이다.'
다행히 그것이 하나뿐이었기에 망정이지 둘만 되었어도 도를 이룰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극명한 표현으로 음행을 경책한 부처는 마침내 경전사상 가장 유명한 말로 이렇게 타이르고 있음이다.
'차라리 너의 남근을 독사의 아가리에 넣을지언정 여자의 몸에는 넣지 말 것이다.'
이 유명한 극언이 나오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경위가 있다.
일찍이 부처가 베살리에 머무르고 있을 때 흉년이 들어 많은 비구들은 걸식하기가 힘들었다. 이때 칼란다카 마을 출신의 '수디나'는 그 고장에서도 재산이 많은 집안의 아들이었으나 믿음이 굳었기 때문에 출가하여 수행승이 되었다.
수디나는 생각하였다.
'요즘처럼 걸식하기 어려운 때는 차라리 여러 스님들을 우리 고향집 가까이 모시고 가서 지내면 어떨까. 그러면 의식(依食)에 곤란도 없어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집 식구들도 이 기회에 보시를 하여 복덕(福德)을 짓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수디나는 비구들과 함께 칼란다카로 떠났다.
수디나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여러 스님들과 함께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찾아가 만났다.
"수디나, 이제는 집에 돌아가서 살자. 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집안에 남자라고는 없으니 많은 재산이 나라에 몰수될 형편이다. 네가 이 집안을 돌보지 않으면 어찌 되겠느냐."
그러나 수디나는 청정한 생활을 즐기고 도를 이룰 뜻이 굳어 어머니의 그런 말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이튿날 어머니는 며느리를 곱게 꾸며 수디나에게 데리고 와서 애원하였다. "네가 정히 그렇다면 자식이나 하나 두어 너의 대를 끊이지 않게 해다오."
"그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수디나는 응낙을 하고 아내의 팔을 끼고 숲 속으로 들어가 관계를 가졌다.
그 후 부인은 아홉달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는 얼굴이 매우 단정하였다. 한편 수디나는 아내와의 관계를 갖은 뒤로부터 항상 마음이 언짢아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함께 수행하던 벗들이 수디나가 우울해 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수디나, 그대는 오랫동안 청정한 수행을 닦아 위의(威儀)와 예절을 모르는 것이 없는데 요즘은 어째서 그렇게 우울해 하십니까."
그러자 수디나가 대답하였다. "얼마 전에 예전의 아내와 관계가 있었던 그 뒤부터는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합니다."
이때 비구들은 이 사실을 부처에게 여쭈었다. 부처는 이 일로 해서 모든 비구들을 모아놓고 수디나를 불러 확인하였다.
"수디나, 들리는 말과 같이 너는 정말 그런 짓을 했느냐."
이에 수디나가 고백하였다. "그렇습니다, 부처님. 저는 부정한 짓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처는 여러 가지로 꾸짖었다. "네가 한 일은 절대 옳지 못하다. 그것은 의의가 아니며 사문의 할 일이 아니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수디나, 청정한 법을 수행해 애욕을 끊고 번뇌를 없애야 열반에 들어간다는 것을 어찌하여 잊어버렸는가."
그리고 나서 마침내 부처는 그 유명한 사자후를 토해 내기 시작한다.
"너희들은 차라리 남근을 독사의 아가리에 넣을지언정 여자의 몸에는 넣지 말라. 이와 같은 인연은 악도(惡道)에 떨어져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욕은 착한 법을 태워버리는 불꽃과 같아 모든 공덕을 없애버린다. 애욕은 얽어 묶는 밧줄과 같고 시퍼런 칼날을 밟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애욕과 성욕을 경계한 부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타이르고 상기시켜주곤 하였다.
부처의 사촌이었던 '아난다'가 부처에게 "출가한 사문은 여인을 어떻게 대하면 좋습니까" 하고 묻자
부처는 서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서로 마주보지 말아라."
아난다가 다시 물었다. "만약 서로 마주보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불어 말하지 말아라."
"만약 더불어 말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부처는 말하였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라, 아난다야."
그리고 나서 부처는 다시 말하였다. "여인을 마주보지도 말고 함께 이야기하지도 말아라. 나이 많은 여인은 어머니로 생각하고, 손위가 되는 여인은 누님으로, 나이 적은 여인은 누이동생으로, 어린아이는 딸처럼 생각하면 절대 부정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부처는 다시 말하였다.
"도를 닦는 사람은 마른풀을 가진 것과 같아서 불에 가까이 가지 말아야한다. 수행인이 욕망의 대상을 보거든 마땅히 멀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음란한 생각이 그치지 않음을 걱정한 끝에 자기의 남근을 칼로 끊으려 하였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타이른 적이 있다. '생식기를 끊는 것은 생각을 끊는 것만 못하다. 음란한 생각이 쉬지 않고서 생식기를 끊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들은 애욕으로 인해 걱정이 생기고 걱정으로 인해 두려움이 생긴다. 애욕을 떠나버리면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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