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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12월10일 밀시아데스 교황

by 파스칼바이런 2011. 11. 8.

축일 12월10일 밀시아데스 교황

 

San Milziade (o Melchiade) Papa

St. miltiades

 

 

멜키아데스라고도 부르는 그는 아마도 아프리카 출신인듯 보여지며, 311년 7월 2일에 교황 성 에우세비오를 계승하여 교황좌에 올랐다.

밀시아데스의 재임 기간은 콘스탄티노 황제가 밀비아노교에서 막센시우스를 격퇴하고 승리함으로써 크리스챤에 대한 오랜 박해가 종식하던 시기였고(312년), 따라서 콘스탄티노 황제를 통하여 제국 내의 종교 자유를 획득한 중요한 시기였다(313년).

그러나 이와 동시에 도나투스 이단이 이프리카에서부터 서서히 고개를 쳐드는 교회 내의 혼란 시기가 시작되던 때였다.

그는 313년, 라떼란 궁에서 시노드를 소집하여 도나투스를 단죄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 도나투스파

 

라틴어 Donatismus

영어 Donatism

 

도나투스(Donatus, 313~347)에 의해 제창된 북아프리카 교회의 이단사상.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303~305년) 때 교회 안팎에는 많은 배교자가 생겼다. 박해가 멎고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을 때 이 배교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당시 배교한 주교 펠릭스는 체칠리아노(Caecilianus)를 서품한 3인의 주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말썽이 되어 순교자에 대한 공경과 신앙에 투철한 엄격주의자들인 70명의 주교들은 도나투스의 영향을 받아 카르타고의 주교로서 체칠리아노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마요리노(Majorinus)를 새 주교로 뽑아 임명하였다. 그러나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체칠리아노에게 호의를 보여 후자의 결정을 몇 차례에 걸친 시노두스를 통해 일축해 버렸다. 이 분쟁은 마요리노 사후 도나투스에 의해 계승되었다.

 

도나투스는 일종의 엄격주의자, 완벽주의자로 신앙에 대한 열성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나 그의 지나친 완벽주의적 견해는 성사적 의미에 대한 신학적 문제를 야기시켰다. 즉 배교자나 열교(裂敎)인 이단자들에 의한 성사집행은 무효라는 것이다. 성사는 그 집행에 의해 은총이 주어지는 것[성사의 事效性, ex opere operato]이 아니고 집전자의 성성(聖性)과 정통성에 따라 성사의 유효 · 무효가 결정된다[성사의 人效性, ex opere operantis]는 그의 주장은, 아우구스티노를 비롯한 후대 교부들에 의해 반박되었다. 따라서 이단자가 베푼 세례는 무효이기 때문에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나[이단자 세례논쟁] 교회는 성인(聖人)들만의 교회이어야 한다는 극히 제한적이고 엄격한 교리관은 모두 교회에 의해 반박 단죄되었다. 도나투스파는 5세기부터 영향력을 잃었으며 7세기경에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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